오범열 목사(성산교회)

▲ 오범열 목사(성산교회)

이 땅에 복음의 빛이 비친지 130년이 흘렀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여기저기서 병든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본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앓고 있는 질병의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겉모양 겉치레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다. 하나님은 외모보다 중심을 보신다. 따라서 선한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둘째, 맘모니즘 즉, 물질주의에 치우쳐 세속화되었다. 깊이 뿌리내린 물질우상을 버리고 물질에 노예 되지 말고 물질을 다스리고 바르게 선용해야 한다. 셋째, 열심을 품고 섬기는 주를 향한 열정이 식었다. 반드시 열정을 다시 찾아 불타오르게 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뜨거운 열정을 본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전은 무엇인가?

첫째, 형식적 신앙 자세가 변하여 내용이 참되고 알찬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힘만이 무거운 짐을 견디게 하고 굳건히 서게 한다고 했다. 철저한 신본주의 신앙이 요구된다. 본질적인 거듭나는 역사를 체험해야 한다. 포장보다는 내용이 중요하고 겉보다 속이 중요한 것이다. 주님을 붙들어야 하고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한다. 수동적으로 사로잡힌 바 되어야 한다. 결코 수박 겉핧기 식의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동력인 것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명예를 최고로 여기면 야심이 그 사람을 장악하고 돈을 최고로 여기면 탐욕이 하나님 나라를 점령한다”고 했다. 또한 쾌락을 최고로 여기면 그 사람은 방종에 빠진다고 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겉 사람의 욕심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명령과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변화해야 한다. 오직 주님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심중에 굳게 다짐하고 세상 소리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 다짐하며 실천에 옮겨야 한다. 평생 예배당 문턱만 왕래하고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못 만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을 만나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물가에서 주인을 참으로 만나야 한다. 스치고 지나가지 말고 붙들어야 한다. 주님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를 따라야 한다. 동행해야 한다.

둘째, 물질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질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물질은 사람을 변질시킬 뿐 인격적으로 만들 수 없다. 필요한 물질이지만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은 일만 악의 뿌리요 시험의 도구이다. 돈 문제로 형제의 사랑이 갈라지고 떠난다. 물질에 눈이 멀어 국가의 국비를 축내고 공금유용으로 쇠고랑을 차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물질보다 더 값진 것은 시간이다. 물질은 되찾을 수 있으나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은 적당하고 정당하게 사용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배금사상 즉 하나님 위에 물질을 놓고 절하는 물질 우상숭배에서 떠나 다스리고 잘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셋째, 신앙의 열정을 회복해야 한다. 삭개오처럼 뽕나무 위에 올라가는 열정의 사람에게 주님은 찾아오시고 만나주신다. 열정의 샘터는 말씀이다. 주님 사랑은 말씀 사랑이다. 한마디 말에 상처받아 낙심하는 연약한 마음을 강한 말씀으로 든든히 하여 뜨거운 열정과 그리스도인의 긍지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사도 바울의 목숨 건 열정을 닮아가며 성경의 성공적 신앙인들의 장점과 그 열정을 본받아 불꽃처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인류의 종말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신앙의 여유와 열정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간절한 소원과 기도로 출발하고, 그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하며, 변화의 능력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변화 이후의 모습을 그리며 항상 도전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변화된 이후는 항상 겸손해야 하며 결코 자신을 비하하고 좌절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과거의 실패한 자신을 생각하며 괴로워하거나 비관하지 말고 오히려 주 안에서 자신을 긍정하며 자존감을 가지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며 바로 지금 변화하여 새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괴테의 말을 되새겨 본다. “단 하루의 시간이라도 제대로 알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시간이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삶의 변화요, 시간의 변화이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하여 세속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거룩한 영성의 삶을 가꾸고 다듬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로드맵과 프로젝트를 가지고 기쁨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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