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 교수 “기도를 국가행사 중요 자리로 인식”

개혁주의생명신학포럼

민경배 교수(백석대 석좌)는 한국 기독교가 초기부터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었으며 기도를 국가 행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형식으로 민족교회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고 소개했다.

민 교수는 10월 22일 백석대에서 열린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에서 한국교회가 1907년 평양대부흥회 이전부터 기도에 힘썼으며 국가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렸다. 민 교수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평양대부흥회 11년 전인 1896년 9월 2일 ‘대군주탄신축하행사’를 주도했다. 이 행사는 한국역사상 최초의 국가행사로 기록되어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행사를 주관했으며 경축회는 주기도문으로 마쳤다.

1897년 8월 23일 고종황제의 ‘탄신축하경축회’도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 한 교인이 기도했고, 아펜젤러 목사가 설교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쳤다. 찬송도 함께 불렀다. 1898년 9월 10일 ‘조선조 개국 507년 기념일 경축축하회’도 기도로 시작하고 온 회중이 주기도를 외웠다.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 때는 교회가 이를 크게 광고하여 학생들은 일제히 휴학하고 교인들은 매일 기도회를 열었다. 또 그해 4월 고종 신변 위급을 알자 평양 교인들은 매일기도회를 개최했다.

▲ 민경배 교수(오른쪽)가 개혁주의생명신학 포럼에서 초기 한국교회의 민족성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3.1운동 때에는 “우리는 아침에 기도하고 낮과 밤에 기도하며 주일에 금식합니다”라는 호소문이 나돌았다. 해방 후 1948년 5월 31일 역사상 처음으로 제헌국회가 모였을 때 임시의장 이승만은 회의를 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이윤영 의원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교계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기도운동의 시발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민 교수는 한국교회의 기도 전통은 복음전래 초기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해줬다.

민경배 교수는 “기도 없는 종교인은 죽은 것이며 기도는 종교의 최초 최고의 가장 엄숙한 현상이요 표현”이라면서 “우리는 끝없이 육체의 존재를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기도의 무릎으로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개회예배 설교를 한 장종현 박사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개혁의 외침은 많지만 기도성령운동이 없다면 그 모든 외침은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라면서 “한국교회 전체가 기도하면서 회개할 때 새로운 영적 부흥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백석대학교(총장:장종현 박사)가 주최한 포럼에는 민경배 박사 외에, 권성수 박사(대구동신교회), 김연희 박사(신생중앙교회)가 주제발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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