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택 목사(울산서현교회)

▲ 이성택 목사(울산서현교회)

오늘날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 시대에는 기계문명의 발달과 함께 하루하루가 급변하는 시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 시대의 교육 시스템도 생존 경쟁에 맞춰야 살아남는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우리 성도들은 다음세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특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일학생, 중고등부, 청년들을 둔 부모에게 맡겨진 시대적 사명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부모들은 신앙 교육보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 교육이 일반 교육에 떠밀려 부모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의 중요성과 그 대안을 성경적인 근거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스라엘 부모세대들은 출애굽 할 때부터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하심을 직접보고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르치고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이러한 우려는 결국 현실로 드러나게 되고,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걷잡을수 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를 잘 기록한 말씀이 사사기 서론 부분이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사사기 2:7)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사사기 2:10)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적인 지도자였던 모세와 여호수아가 리더로 있던 세대가 끝이 나고 뒤에 이어지는 세대를 소개할 때에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다음세대라고 말하는 것이 문맥의 흐름상 자연스러운데, 사사기 저자는 다음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사용되어진 ‘another’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또 하나의’ ‘또 다른 것’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 안에는 ‘different’라는 뜻, ‘완전히 차이가 나는’ ‘색다른’ ‘특이한’이라는 뜻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

신명기 6장 3절을 보면 머리가 백발이 된 할아버지 모세는 다음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유언했다. 그 목적은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 곧 후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번성하기 위함이었다.

성경 교육의 중요성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한다는 데 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생각이 바뀌게 된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러했으며, 이사야가 그러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초학문을 익히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위에 그 학문들이 펼쳐질 때 더욱 가치 있고 바르게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로마는 인류 역사상에 존재했던 제국 중에서 최강의 나라였다. 그러나 의외로 이 나라가 힘없이 무너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본의 유명한 로마교회사 전공자 유게도루는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라는 책에서 탐욕, 부정, 낭비, 사치, 과소비, 퇴폐, 성적타락 등으로 로마가 병들었기 때문이다’고 진단했다. 사도바울은 로마의 멸망 원인을 로마서 1장 28절에서 ‘저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언론에서 청소년 문제 해결 방법으로 교육환경을 개선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환경이 개선된다고 청소년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속에 원죄가 있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아무리 교육환경이 좋다 하더라도 새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진정한 인간성이 회복된다.

누가 뭐라해도 말씀을 통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치원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는 장탄식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한숨을 지을 것이 아니라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을 통한 교육은 세상 그 어떠한 것과 비교가 될 수 없는 위대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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