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개혁신학 수호, 정통칼빈주의 충실했다”

분리주의와 독창성 없다는 비판은 오해 …
한국교회에 바른 신학적 안목 갖게 한 공로 커

죽산 박형룡 목사의 신학에 대해 일부에서는 독창적인 것이 없다고 한다. 그저 미국과 화란의 신학을 그대로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말한다. 박형룡 목사의 신학적 업적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김길성 교수(총신신대원 명예)에게 듣는다.
<편집자 주>

 

▲ 김길성 교수는 “박형룡 목사의 신학은 교단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나 학적인 깊이에 있어서 대단하다”면서 “박 목사의 신학을 꾸준히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룡 목사의 신학은?
=시종일관 그분의 신학사상은 역사적 개혁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형룡 목사는 정통칼빈주의라고 불리는 신학에 충실했다.

박 목사님은 평양신학교에서 교수로 사역하시면서 한국교회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양신학교에 부임했던 첫 번째 한국인 교수는 남궁혁 박사(신약학, 1927년 부임)였고 두 번째가 이성희 박사(구약학, 1928년 부임), 그리고 세 번째가 박형룡 박사(조직신학, 1930년 부임) 였다. 박형룡 목사가 평양신학교 교수가 되면서 한국인 교수가 세 명이 되었고 이후 한국인 학자들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 최초의 한국인 교수들은 프린스턴신학교 출신이었다. 이들이 공부했던 당시 프린스턴신학교의 학풍은 개혁신학의 전통에 입각해 있었다. 구 프린스턴의 신학전통이 평양신학교에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한국교회 초기 신학이 복음주의였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평양신학교 초대 교장 마포삼열 목사가 시카고의 맥코믹 신학교 출신이었고 초기 선교사들은 맥코믹 출신들이 많았다. 그러나 평양신학교 제2대 교장으로 프린스턴신학교 출신의 라부열 선교사가 부임했고(1924년) 이후 프린스턴 출신의 남궁혁, 이성희, 박형룡 목사가 교수가 됐다. 나중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의 박윤선 박사까지 가세하면서 평양신학교를 통해서 개혁신학이 한국교회에 뿌리내리게 됐다. 남궁혁 박사와 이성희 박사는 1950년 납북됐다. 박형룡 목사는 1972년 총신에서 강의를 그만둘 때까지 교단 신학의 중심에 있었다.

▲박 목사는 분리주의자인가?
=박형룡 목사를 분리주의자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교단의 분열을 염두하고 역할을 하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지키고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개혁주의신학을 강조한 것 뿐이다. 그 분이 차지했던 위치가 컸기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다. 교단분열을 어찌 박형룡 목사 한 명이 좌지우지할 수 있었을까? 물론 1952년 예장고신과 분리는 신학적 차이라기 보다 신사참배 문제때문이었기에 아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우 신학을 부산이라는 한 지방이 아니라 서울에서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심 때문이었다. 1953년 김재준 목사의 신학사상과 관련해서 기독교장로회가 분리되었고,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입장차이로 예장통합이 갈라졌다. 신학사상 수호가 먼저였고 분리는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분리를 사전에 염두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박형룡 목사(오른쪽)과 박윤선 목사. 두 사람을 빼고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 신학을 언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 인물에 대해서 교단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요청이 많다.(사진제공=총회교육출판국)

▲신학에 독창성이 없다고 지적받는다.
=그렇지 않다. 박형룡 목사는 자신의 저술을 ‘지로적 신학(指路的 神學)’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겸손의 의미다. 박 목사의 글을 읽어보면 서구의 방대한 신학자료를 섭렵한 뒤 통찰력을 가지고 한국의 상황에 맞게 잘 정리했다. 대표적인 것이 <교의신학>이다. 혹자는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의 번안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교의신학>은 <조직신학>보다 3배에서 4배 더 많은 분량으로 구성했다. <조직신학>은 <종말론>이라고 이름 되어 있으나 박 목사는 <내세론>으로 명명했고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이미와 아직(Already/Not Yet)’의 구속 역사적 관점에 비추어 종말론을 서술했다. 또 내세론에 있어서 시종일관 역사적 천년기전설의 입장에서 서술했는데 무천년설 입장을 취했던 벌콥과 다른 점이었다.

박형룡 목사는 수많은 저술과 논문, 설교집을 발표하면서 한국교회에 개혁신학 전통을 뿌리 내리게 했다. <교의신학> 외에 박사논문인 <자연과학으로부터의 반기독교적 유추>는 당시 기독교를 공격했던 일부 과학자들의 이론을 학문적으로 논박했고 자연과학의 한계를 드러냈다. <기독교근대신학난제선평>은 그의 학문적 입지를 확고히 했던 책인데 총 19장에 걸쳐서 19~20세기 초반 자유주의와 반기독교 사상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혼란케 했던 이단들까지 비판적으로 다뤘다.

박형룡 목사의 시대에는 한국의 신학이란 없었다. 중국에도 자신들의 신학이 발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일본에 가서 공부했으며 자유주의였던 미국 유니온신학교와 연계된 일본 청산학원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박 목사가 자유주의가 아닌 개혁신학 신학을 이해하고 정리하여 한국교회에 전하고 한국교회가 바른 신학적 안목을 갖도록 해준 공로는 지대하다.

▲신학적 계승은 어떻게 돼왔나.
=그의 소천 후 그를 존경하던 제자들과 교계 지도자들이 힘을 합해 <박형룡 박사 저작전집>(1977~1983, 전 20권)을 발간했다. 2017년에는 <조직신학전집>(전 7권)을 현대어체로 개정하여 출간했다. 한국교회 신학을 이해하려면 박 목사의 저서를 읽어야 한다. 총신에서 1997년부터 죽산신학강좌를 시작했고 한때 교단에 ‘박형룡박사기념사업회’도 조직했으나 지금은 활동이 없다.

박형룡 목사의 신학이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그 역시 시대의 사람이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박형룡 목사의 사상이 계승되고 꾸준히 조명되기를 바란다. 또 그의 신학을 뛰어넘는 큰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서두에 박용규 교수(총신신대원)는 논문의 의의에 대해 충실한 해제를 달았는데 그의 설명처럼 박형룡 목사의 박사논문은 그의 신학이 결코 편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오히려 성경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 열린 태도를 가졌다. 논문의 제목을 보면 ‘자연과학의 반기독교적 유추’가 아니라 ‘자연과학으로부터의 반기독교적 유추’라고 되어 있다. 즉 자연과학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과신하는 일부 자연과학자들의 반기독교적 주장이 문제라는 의미이다.

박 목사는 자연과학은 일개 가설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인류에 기여한 놀라운 기여 때문에 기독교 교리마저 재단할 수 있다는 과도한 생각을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런 과신을 가진 일부 잘못된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비롯한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목사는 자연과학으로부터의 반기독교적 유추를 논박하기 위해서 여섯 가지 중심 주제를 다뤘다. 종교, 성경,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사역, 인간의 본성에 관한 고등개념, 그리고 죄와 구원이다.

제1장 ‘종교’에서는 현대 과학은 전능한 신처럼 숭상되고 우리 시대가 널리 숭배하는 대상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고 못박았다. 박 목사는 종교와 과학은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펼쳤다. 자연과학과 기독교는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단지 자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논지를 가졌다.

제2장 ‘성경’에서 그는 성경은 기독교 신앙과 삶에 유일한 법칙이라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포기한다면 성경의 가르침, 나아가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박 목사는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성경이 과학 이론들을 지지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성경에서 과학의 원리를 찾으려고 하는 시도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제3장 ‘하나님의 존재’에서 성경에 대한 자연과학으로부터의 반기독교유추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움직임은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려는 생각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무신론과 범신론은 기독교에 대항하는 가장 악한 적이라고 비판했다. 제4장 ‘하나님의 사역’에서는 진화론은 단지 하나의 일시적인 가설일 뿐, 발견되거나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화가설 자체는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기독교신앙에는 과학적인 진화론과 충돌하는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제5장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등개념’에서 종과 종간의 진화를 비판하면서 인간은 화학작용이나 혈구 모양 등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다르다는 점을 논증했다. 제6장 ‘죄의 기원’에서 인간에게서 타락의 교리를 찾을 수 없다면 기독교 교리는 세울 수 없다고 언급했다. 진화론은 죄가 없는 인간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진화론 체계 속에서의 구원은 투쟁과 노력, 우생학과 환경우생학, 교육, 종교 뿐일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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