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교회음악과 교수>

“저기… 하◯송 선생님하고 어떤 관계세요? 혹시 형제세요?”

“예. 형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예요.”

필자가 교회음악 사역자들과 대화할 때 가끔씩 경험하는 일이다. 이름에서 가운데 한 글자만 서로 다르다 보니 형제라고 추측하고 확인차 질문을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형제가 아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는 대답을 하곤 한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대부분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은 그 대상을 식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해당 대상들의 관계도 파악한다. 이것은 노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노래에는 소위 ‘제목(title)’이라는 것이 붙어 있다. 이 제목은 사실상 그 노래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그 제목이 그 노래를 식별하는 기본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노래에 붙어 있는 제목은 가사와 곡조를 통칭하는 것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상 어떤 노래의 제목은 대체로 그 노래 ‘가사’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가사)에 곡조가 붙어서 <진달래꽃>이라는 제목의 가곡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노래의 경우 ‘곡조’ 자체에는 별도의 제목이 붙어 있지 않고, 가사의 제목에 따라서, 또는 가사와 함께 통칭하여 그 노래의 제목이 붙여지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 찬송가는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왜냐하면 찬송가의 모든 곡조에는 별도의 이름, 즉 ‘곡명(tune name)’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찬송가의 곡조가 찬송 가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곡명이 찬송가의 제목과 같은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이 곡명은 찬송가의 제목과는 별도로 붙여져 있다. 이러한 찬송가 곡명은 각 찬송가 악보의 오른쪽 위 첫줄에 영어 알파벳 대문자로, 그리고 한국 찬송가의 경우에는 한국어 명칭으로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의 경우 <OLD HUNDREDTH>가 그 곡조의 이름이고, 찬송가 592장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의 곡명은 <감사 찬송>이다.

찬송가의 곡명은 작곡자에 의해서, 그리고 작곡자가 명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대체로 찬송가집의 편집자나 편집위원회에 의해 붙여진다. 이 곡명은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 너 있었는가>(147장)의 <WERE YOU THERE>처럼 그 노래의 원어 제목이든지, <주 달려 죽은 십자가>(149장)의 <HAMBURG>와 같이 지역 이름이든지, <천사 찬송하기를>(126장)의 <MENDELSSOHN>처럼 사람 이름인 경우도 있다. <저 높고 푸른 하늘과>(78장)의 <CREATION>처럼 곡조의 출처가 되는 음악작품의 제목이기도 하고, <주 이름으로 모였던>(55장)의 <DISMISSAL>과 같이 그 찬송의 용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곡명은 찬송가 곡조의 독립성과 고유성을 나타낸다. 즉, 찬송가 곡조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떠한 가사든지 그 운율과 강세, 분위기 등이 서로 잘 맞으면 그 가사에 붙여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MARTYRDOM>이라는 동일한 곡조에 붙여진 2편의 찬송, <웬 말인가 날 위하여>(143장)와 <웬 일인가 내 형제여>(522장)가 현행 찬송가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름을 알아야 하듯이, 각 찬송가의 곡명에 익숙해져서 그 찬송가를 더 깊이 이해하면서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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