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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독립전쟁 이야기이종찬 목사(주필)

1763년 영국은 지루한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전쟁은 프랑스와의 전쟁이었다. 당시 두나라는 에필레치아 산맥과 미시시피강 사이의 드넓은 영토를 높고 패권을 다툰 것이었다. 그 결과 뉴프랑스는 사라지고 위로 퀘백에서 아래로는 미시시피강까지 영국 영토가 되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불어난 채무를 북미식민지에서 채울 요량으로 북미에 인지법(Stamp Act)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모든 서류와 인쇄물에 유료인지를 붙이게 하는 법이 인지법이었다.

이에 식민지는 반발했지만 영국정부는 더 심한 과세 정책으로 북미주민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모든 물품에 매겨진 관세에다 인지세까지, 영국의 차별 정책은 북미주민들을 분노에 떨게 했다.

그 폭발이 1770년의 보스톤 대학살이었다. 다섯 명이 죽은 이 사건은 소수의 희생이였지만 영국군에 의한 공격적 만행이었기에 북미 대륙으로 치를 떨게 하는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었다. 1773년 메사추세츠의 사무엘 아담스는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 이라는 모임을 결성해 수탈의 상징인 영국동인도 회사의 배를 습격했다. 342개의 차 상자들이 바다에 던져진 이사건을 역사는 ‘보스턴 차 파티’ (Boston tea party)라 부른다. 이 사건에 대해 영국군은 보스톤 항을 폐쇄하는 동시에 배상을 요구했다.

1774년 4월5일 북미 식민지의 13개주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서 첫 번째 대륙회의를 열었다.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 모임에서 저들은 기도했다. 그리고 난상토론 끝에 영국에 항의단을 보내기로 결의해 파견했지만 수모만 당한 채 아무런 소득없이 귀환해야 했다. 오히려 영국국왕은 불충으로 여기고 무력제압을 위해 병력을 증파하는 초강수로 대처했다. 여기에 맞서 봉기한 곳이 메사추세츠의 보스턴이었다. 저들은 수분 내에 움직이는 기동성을 가진 부대라는 미니트맨(Minuteman) 이라 부르는 민병대였다. 이때 영국군대는 혁명의 선봉장 존 핸콕과 사무엘 아담스를 체포하면서 발 빠른 대처로 기선을 제압했다.

당시 은제품 생산업자로 ‘자유의 아들들’의 일원이었던 폴 리비어(Paul Revere) 는 영국군의 동태를 살피다 밤에 말을 달려 민병대에 알렸다. 프랑스 위그노의 아들이었던 폴 리비어는 훗날 시인 통델로우로부터 그의 애국적 행동을 칭송받는다. 첫 전투가 보스턴 외곽에서 벌어진 렉싱턴 전투였고, 이어 콘코드 전투에서 민병대가 승리하고 있었다. 독립전쟁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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