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최근 우리 사회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대체복무제’라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법원 그리고 국회까지 나서서 대체복무제를 외치고 또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무의 놀라운 변화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당하게 병역을 면제 받아도 의심으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사회였다. 그래서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단골 메뉴처럼 등장해왔다. 그런데 대체복무라니?

최근 법원은 병역기피로 기소된 사람들에게 줄줄이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대체복무제가 시행되지 않았지만 실제적 병역 면제는 이미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체복무제라는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일부에서 주장하듯 결코 양심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특정종교 신자들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 중 병역기피로 기소된 사람이 52명이다. 그런데 이 중 50명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라는 것을 아는가?

이쯤에서 우리는 ‘도대체 여호와의 증인 신자 수는 얼마나 되나’ 궁금하지 않은가? 얼마나 될까? 10만 명 정도로 전 인구의 0.2%에 해당된다. 기독교가 최대 수를 자랑하던 때에 비하면 겨우 1% 수준이다.

미국의 사회학자로서 종교사회학과 관련된 연구로 유명한 로버트 벨라(Robert Neelly Bellah)는 한 민족의 2%가 비전을 가지면 문화의 길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2%가 아니다. 그 100분의 1에 불과한 0.2%로 우리나라의 ‘신성한 의무’라고 불리던 병역제도를 바꾼 것이다. 참 부끄럽다. 우리 기독교는 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같은 교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을 이단이라 판단하는 우리들 중에 군이 아닌 감옥에 가기를 선택하는 수는 얼마나 될까?
제103회 총회에서 우리는 1938년 제27회 총회의 공식적인 신사참배 결의 80주년을 맞아 회개의 기도를 했다. 그러나 80년 전에도 그랬듯 지금도 우리는 신사에 버금가는 온갖 대상들에 너무 쉽게 무릎 꿇고 있지 않은가? 권력이라 할 것도 아닌 작은 것에 목을 매고 있다. 또 교회가 가진 물질적 힘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 우리들이 0.2%의 수십 배의 수를 자랑한다 한들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꾸며 어떤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기는 한가? 아니 그런 의지를 가지고는 있는 것일까? 내 자신이 변화되지 않는데 무엇을 바꾸겠는가? 이번 총회에서 경험했을지 모르겠다. ‘변화하라’는 제103회 총회가 추구하는 가치대로 총회의 분위기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박수를 보내다가 파한 후 시간이 지나니 이런저런 저항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세상의 변화는 요원하다. 그러기에 건강한 변화의 방해꾼은 내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급한 대로 ‘이것’부터 바꾸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평범하고 당연한 명제가 왜 이다지 힘든지 모르겠다. 교회가 갈등하고 노회의 다툼은 그칠 줄 모르고 총회 역시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 왔다. 연합기관은 다투고 갈리고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보수교단의 위상은 매우 낮은 상태에 이르렀다. 이번 대통령의 3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명단만 봐도 알 수 있다. 총 52명 중 종교계는 4개 종단 4명이다. 그런데 기독교 몫은 진보진영의 연합체가 차지했다. 훨씬 수가 많아도 힘이 없다. 하나가 되지 않은 결과다. 보수적인 교단들이 서로 달라도 조금씩 조율하고 타협하며 하나가 되지 않는 한 20%가 아니라 50%라도 0.2%만큼도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하고 용납해야 한다. 조금 다른 것으로 인해 밀어내고 갈라진다면 결코 교회는 연합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주로 총회 파회 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리다툼이다. 그것을 위해 로비나 부탁을 넘어 압력도 행사하는 모양이다. 왜 그럴까? 어느새 우리들 안에서 섬김을 위한 자리가 권력이 되었고 그것을 통해 뭔가 얻고자 하는 욕망이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총회장은 취임사에서 자리가 권력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저변의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일을 하자. 섬기자. 자리를 차지하고 위세를 부리거나 이익을 도모하고 명예로 삼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섬길 자세가 아니라면 자리를 깔고 앉는 일은 멈춰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일이 되게 하려면 전문가는 못 돼도 그에 버금가는 지식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적소에 포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실현 가능한 변화들이 힘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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