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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역사와 사회에 기여하는 제103회 총회가 되자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제103회 총회가 이번 주간에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열린다. 총회가 열려도 별로 기대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인생이나 그것을 그냥 보고 있는 인생이나 다 한 가지인 것을.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 같은 존재들인데.”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이지러진 논리에 빠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 하나 없어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 그리고 공익적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자가 공익적 사명을 저버리면, 그것은 죽음으로 면죄되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으로 피해가지 말고, 해결하고 죽고, 해결하다 죽어야 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면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일그러진 자신감이, 부끄러운 일에 대해 죄악감조차 없이 자신 있게 부끄러움을 행하는 인생들의 전능적 무기일 수는 없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회악적 요소가 거룩한 영적집단의 한 요소로 굳이 자리 잡을 필요도 없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할 줄 알고,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워 소심할 줄도 아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권력을 취하는 총회가 되서는 안된다

은혜 공동체에는 바르게 잘 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줄 줄 아는 정직함과 용기가 힘을 다 하였으나 실패하고 낙심하는 사람에게 기회주고 손잡아 일으켜 세워줄 줄 아는 배려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같이 힘을 합해 과거를 곱씹으며 현재를 딛고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 그러나 조그만 권한이라도 가지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인가 휘두르려 하고 그것을 통해 부끄럽고 쪼잔한 유익을 챙기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부러워하며 그에 기생하여 더 작은 권력이라도 구축하여 비굴한 인생의 밥 몇 끼 해결하려 한다.

교단총회는 사회적 용어로 종교회의이다. 역사 속에 종교회의는 긍정적 평가가 있었던 때도 있지만, 부정적 평가가 따르는 것 역시 상당수였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왜 모였는가? 무엇을 위해 그 아까운 인력들이 그 아까운 시간과 비용을 치루며 모였는가? 각 노회마다 총대 선출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고, 이 종교회의에 참여하여 무엇을 이루라는 임무를 주었는가?

그렇다면 주님 나라를 위해, 이 역사와 사회에 기여 공헌함을 위해, 이 종교회의에 참여한 총대들은 각자 바른 방향을 잡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본적인 역사의식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발언과 결정과 소신이, 역사와 사회 하나님의 나라에 어떤 유익이 되는가, 아니면 의미 없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을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혐오스러운 세상정치 아류로서 더 혐오스러운 교권정치를 통해, 머릿속으로는 딴 생각하고 허허 거리며 넥타이 맨 양복차림의 웃는 얼굴로 악수하고, 돌아서서는 딴 사람이 되지는 않기 바란다. 어떻게든 포복으로 기어가서라도 한 자리 차지해서, 보란 듯이 작은 권력이라도 흔들며, 그 그늘에 들어올 사람 많다 외치며 잠시의 부끄러움에 나를 맡기지는 않았으면 한다.

역사와 사회 앞에 희망을 주는 총회

우리는 황무지에서 장미꽃을 피워야 한다. 황무지에 떨어졌다면 끝이고 죽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곳에서 꽃을 피우라는 하나님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샘의 근원을 향해 무딘 삽 한 자루 가지고 파들어 가야 한다. 도중에 우리 삶이 끝난다면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 다음 사람이 파들어 가고, 또 그 다음 사람이 파들어 가다 보면, 언젠가 샘의 근원에 도달할 것이다. 황무지가 장미꽃 피는 물댄 동산이 될 것이다. 중간에 그 꽃도 못 보고 그 생을 마친 이들은 실패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와 그 아름다운 사회에 각기 분량만큼씩 기여를 한 거룩한 공헌자들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번 회의에 참여한 총대들은 황무지에 꽃을 피우는 심정으로, 반듯하고 의미 있게 마음을 쓰고 모든 안건을 은혜롭게 결정해야 한다.

제103회 총회가 과연 어떻게 평가되고, 그 여파는 어떻게 미칠 것인가. 역사가 밥 먹여준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한 순간, 지금 한 장면만 볼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고 그 가운데 나의 공익적 사명과 실존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순간이 모여서 역사가 되고, 하나가 모여 사회가 된다. 이번 제103회 총회는 성총회라 하고 인간의 냄새 피우는 슬픈 총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무대인 역사와 민족과 사회 앞에 시대의 희망과 꿈을 주는 성직자들과 시대의 양심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인 영적 회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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