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고려시대의 음서제도, 국채보상운동 같은 자투리 상식들을 왜 머릿속에 담고 살아야 하는 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그 제도가 오늘날까지 ‘금수저’나 ‘갑질’을 일으키는 불씨였다는 것을, 그 운동이 이 땅을 사는 민족의 자주적 생존권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모른 채, 살아가다보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도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나라를 망친 주범을 겨레의 영웅으로 오해하고, 거꾸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린 우국지사를 테러범쯤으로 착각하는 본말전도나 배은망덕을 저지르게 됩니다. ‘가짜뉴스’에 쉽게 현혹되고, 댓글부대의 초보적인 여론조작에도 금세 휘청거립니다.

세상 역사만 그럴까요?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의 분쟁에나,  도무지 개선될 줄 모르는 교단 안팎의 악습과 폐단들에는 ‘역사의식의 부재’가 뚜렷하게 작용합니다.

총회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리는 결정이 행여 우리가 목숨처럼 지켜야 할 역사적 신조나 법적 대의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유사한 상황에서 과거의 결의는 어떠했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야 감언이설에 현혹당하지 않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총회에는 역사공부꺼리들이 총대 여러분께 제공됩니다. 현장에서 나눠드리는 역사저널의 ‘순교신앙’ 이야기를 들여다보시고, 휴식시간에는 특별전시장에 들러 이 땅의 교회들이 지낸 100여 년의 자취들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역사사적지나 순교사적지 지정을 받는 교회들에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는 총회보고서에 알기 쉽게 정리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에 뜸을 들이다보면 이런 결론을 내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제103회 총회가 하나의 역사로구나. 지금의 시간들 또한 교회사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남겠구나. 나의 발언 한 마디, 어딘가에 적어준 서명 한 번이 주님의 생명책이라는 불멸의 역사에 두고두고 새겨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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