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희 목사(예담교회)

▲ 이억희 목사(예담교회)

선거, 숨 가쁜 일정이 지나가고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후보자들은 등록 이후 선거관리위위원회의 승인과 함께 협의회, 연합회, 지역모임, 노회 총대모임, 동기모임, 각종 관계모임 등 크고 작은 모임을 찾아다니며 인사하고 예의를 표하며 지친 미소로 자신을 알렸다. 후보자가 가는 곳마다 총대가 있었고 총대가 모임을 만들면 후보자가 찾아갔다. 입후보자들은 싫든 좋든 모임마다 찾아가야 했고 조금이라도 누군가와 연결되면 언제 어떤 추억이든 끌어내어 아주 가까운 친구인 것처럼 반겼다.

사실 대부분의 총대들은 이런 일정들과 과정들을 잘 알지 못한다.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별로 관심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선거 이전의 과정에서 갖가지 소문들이 나돌고 자격미달, 자격제한, 결격, 제외, 탈락, 보류, 미정, 인정, 결정, 확정, 재심, 직무유기, 둔갑, 조작, 꼼수, 허위서류, 결탁, 불법, 적발 등 단어들이 기독신문 기사에 자주 언급되는 단골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관심 없는 총대들에게는 무엇을 말하는 지 알 수도 없다. 그러나 깊은 관심이 있는 총대들에게는 이런 애매한 단어가 전혀 낯설지 않고 감각도 없다. 이미 당연한 선거문화로 받아들이며 함께 즐겼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후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계수하고 있나?

최근 기독신문(2165호) 기사에는 ‘…선거 출마자들의 물고물리는 이의제기로 술렁이고 있다 … 당분간 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아마도 선거와 관련하여 밀당이 치열했던 모양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물고물리며 들었다 놓았다 하거나, 정치적 포석을 깔고 기발한 방법으로 조정 배치 재배치 재조정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절차들을 통하여 후보자들이 누려야 할 공정과 공평에서 큰 손실을 입고 선거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선거관리규정은 가장 엄격해야 하고 가장 깨끗해야 하는 것을 부정할 총대는 없다. 그러나 억지, 강제, 정치로 해석하여 집착하는 일들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최소한 선거와 관련한 잣대는 분명해야 한다. 긴 잣대, 짧은 잣대, 굽은 잣대, 편 잣대 또는 고무줄 잣대를 가지고 후보자와의 이권에 따라 정략적으로 적용해서도 안 된다.

선거 그 이후. 총회의 각 분야에 임원으로 세워지면 최소한 총회 앞에 살아있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성도와 교회와 노회와 총대 앞에 깨끗해야 하고 성찬식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해마다 선거 후유증은 심각한 정도를 지나쳐서 소송과 헌의로 시끄럽다. 얼핏 보면 선거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선거를 통하여 세워진 사람들과의 부조화 현상이다.

결국은 사람, 사람이다. 규정과 법을 어기고 후보가 되는 것이나 이를 묵인해주고 손잡는 행위는 교회와 목사의 억울한 사건에 공범이 될 수도 있고, 자신에게 돌아올 판례를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결국은 자기가 만든 함정에 자기가 빠지는 불행을 미리 만들어놓고 기다리는 꼴이 된다.

선거, 그 이후. 어떤 위치에든지 당선이 되면 거기에 걸맞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을 얻게 된다. 권한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다. 그러나 권한이 아닌 것을 장담하면 권력을 사용하거나 불법을 사용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권한이 아닌 영향력을 과시하면 잠깐 무게 잡다가 결국은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권한을 권력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불법을 권한으로 위장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공정한 선거를 부정하는 것이고 1624명의 총대들을 속이는 행위이다. 선거, 그 이후. 모든 것의 결과에 대하여 우리는 계속 ‘예의주시’해야 한다. 103회기 총회를 통하여 이루어질 질서와 순리와 조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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