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중세는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시대였다. 그런 유럽인들은 대탐험들을 통하여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런 탐험에 가장 먼저 뛰어든 나라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이 탐험의 대열에 합류한 나라가 영국과 네덜란드와 프랑스였다. 이들은 이 탐험을 통하여 세 가지 목적을 충족시켰는데 그것은 선교와 황금과 무역이었다.

1486년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한 포르투갈 탐험가 바들로뮤 디아즈는 아프리카 남쪽 끝에 이르러 폭풍에 막혀 항해를 접으면서 그곳을 ‘폭풍봉’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또 다른 항해자들은 이곳이 인도로 돌아가는 항로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를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라고 개명하여 부르기 시작한다.

이후 과학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주었고, 지구를 돌 때 유럽의 서쪽으로 도는 항로가 인도를 가기에는 매우 단축된 거리일 것이라고 생각한 인물이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였다. 1492년 8월 3일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으로부터 탐험의 지원을 받은 콜럼부스는 88명의 선원들과 함께 니나 핀타 산타마리아라는 세 척에 배에 몸을 싣고 대서양으로 출항했다. 다수의 선원들은 탐험에 성공하면 사면 받을 중범죄자들이었다. 출항 후 두 달이 지난 10월 12일 마침내 대서양을 건넌 콜럼부스 일행은 새로운 육지를 발견하면서 이 땅이 아시아의 동인도를 발견한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 땅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이 인디언 용어는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이라는 최근의 명칭으로 대체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나 콜럼부스가 발견한 이 땅은 인도도 아니었고 원주민도 인도 사람들이 아니었다. 스페인 선장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수차례의 항해 끝에 대서양의 위도 항로를 정확히 제시한 인물이었다. 이 사람은 콜럼부스가 발견한 땅이 인도가 아니고 신대륙임을 밝혀내어 이 대륙의 명칭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아메리카’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남미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독무대로 정복되었을 때 북미는 영국과 프랑스의 무대가 되었다. 미 대륙은 콜럼부스가 발견했으므로 한동안 콜럼비아라고 불렀다. 그 후 이 명칭은 북미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는데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D.C)는 콜럼비아의 영토(District of Columbia) 즉 미국 소유의 땅이란 뜻으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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