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필자는 2006년 6월에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섬기고 있던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평양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양행은 어려운 일이지만, 2006년 무렵에도 역시 평양을 공식적으로 방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북을 한 목적은 당시 필자가 담당하던 새로남교회 청년부의 인재들 중에서 자비량으로 평양과학기술대학 교수 요원으로 자원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를 타진하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북한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평양을 다녀와서 필자가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잘 믿지를 않았다. 특히 평양과 평양을 벗어난 지역의 생활차이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작금에 우리가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화려한 평양의 모습 외에 다른 평양의 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나조차 이렇게 살 바에는 탈북하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한국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평양을 갖다 와서는 바로 스스로를 애국자의 반열에 올릴 정도였다.

그리고 2008년에 상도제일교회로 부임했는데, 58년 전에 북한지역 출신 성도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개에 불현듯 소름이 돋았다. 북한을 직접 목격한 경험을 가지고, 북한지역 출신들의 성도들의 마음이 담긴 교회를 목회한다는 어쩌면 소명 아닌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금요심야기도회 때마다 북한을 위해서 온 교우들이 모여 기도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조선영 권사님으로부터 매주일 예배 후에 상도동의 탈북자 모임을 위해 밥을 해주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도동에도 탈북자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어떤 단체인지 궁금했다. 7호선 숭실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5층짜리 건물이 서있는데, 그 꼭대기층에 ‘엔케이피플’이라는 선교단체가 입주해있다.

아, ‘N. K. PEOPLE’. 딱 해석이 되었다. 북한 사람들(North Korea People)! 하지만 내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North Korea People(탈북민)이라는 뜻으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New Korea People(통일세대)로, 그리고 New Kingdom People(하나님나라 백성)로 나아가는 것이 N. K. PEOPLE의 진정한 의미였다. 여러 탈북단체가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고, 사역내용들을 상세히 사이트(www.nkpeople.com)에 올려주는 단체는 처음이었다. 통일을 품는 사역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엔케이피플 대표 강디모데 전도사가 쓴 <연어의 꿈> 책 표지.

엔케이피플 대표인 강디모데 전도사. 북한에서 태어나 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5번의 새아버지를 만나 살던 중 식량난으로 탈북을 결심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선교사를 만나 신앙을 갖는다. 강전도사는 육신적으로는 2008년 한국으로 와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삶과 사역적으로는 오히려 북한을 위한 구속의 몸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북한에서 독재의 억압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렀다고 확신하고 있다. 갇혔은즉 갇힌 자를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여 저들을 살리고, 구원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2013년에 선교단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상도동에 한소망교회를 개척했다. 이 과정을 <연어의 꿈>이라는 책에 있는 그대로 담았다. 정말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탈북한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은 혼란스럽다. 과연 어느 것이 정확한 이름일까? 귀순자, 탈북자, 새터민, 북한이탈주민. 이것들은 정부에서 붙여 준 이름들인데, 실제로 당사자들은 불편하게 여긴다고 한다. 탈북한지 2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새터민이라고 부르면, 도망자나 탈락자 등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적합한 용어를 찾아보게 했더니 통일인, 탈북민, 북향민, 자유인, 윗동네 등의 대안들이 나왔고 결과적으로 ‘탈북민’으로 낙점되었다고 한다. 탈북의 경험은 사실이니까 도망자라는 느낌보다 친근감 있게 들려서 좋다는 것이다. 그간 필자의 글에서도 ‘탈북자’로 표기한 부분을 앞으로 ‘탈북민’으로 바꾸어 읽어주기를 바란다.

대통령께서 조만간에 북한을 방문하신다고 한다. 비핵화니 종전선언이니 여러 가지 말들이 있다. 주님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오늘 새벽에도 기도했다.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서 이 땅에 온 통일세대인 탈북민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새로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인 ‘탈북자’에서 그들이 원하는 이름인 ‘탈북민’으로만 바꾸어 불러도 통일에 좀 더 가까워 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선택한 이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마음을 우리가 받아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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