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읍교회, 지역 모교회 자긍 바탕 섬김에 진력
재가복지센터 건립, 사회적 약자 돌봄에도 앞장

뜰에는 성경의 서두와 말미를 장식하는 창세기 1장 1절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이 새겨진 돌판과,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손 모양의 형상이 조화를 이룬 조형물이 세워져있다. 바로 영광군선교 110주년을 맞아 지역 교회협의회가 백수읍교회(이용률 목사)에 세운 기념탑이다.

2009년 현재의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교회의 약사를 소개하는 비석을 함께 건립하고, 2013년에는 앞서 설명한 기념탑이 설치되며 백수읍교회는 이 지역 어머니 교회로서 긍지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

순교성지로 널리 알려진 염산교회와 법성교회, 역동적인 리더십과 거대한 규모를 가진 영광대교회 등 영광지역을 대표하는 교회들이 여럿 있어도 설립연대로만 따졌을 때 백수읍교회를 앞지르는 신앙공동체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 백수읍교회 예배당 전경.

백수읍교회는 특이하게도 한국인들 스스로 시작한 초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의 조사였던 변창연과 김문삼 등의 전도로 이 고을에 살던 표익선 문양삼 등이 먼저 예수를 믿게 됐고, 이들에 의해 1903년 1월 20일 백수읍교회의 전신 대전리교회가 설립됐다는 것이 조선예수교장로 사기의 기록이다.

초창기에 배유지 남대리 등 선교사들의 지도를 받던 대전리교회는 선응칠 김기찬 박인원 등 한국인 교역자들이 강단을 이어받으며 발전을 거듭했다. 몇 차례의 이전을 거쳐 1963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고 예배당을 건축했으며, 1982년 현재의 명칭으로 교회 이름도 바꾸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장갑수 집사와 김진원 영수 등 여러 성도들이 공산군과 좌익세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복음의 사역은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 백수남부교회를 비롯해 백수중앙교회 백수북부교회 백수교회 등 여러 교회를 분립하며, 백수면 일대에 기독교세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산실 역할을 한 것이다.

수많은 복음의 전령들도 길러냈다. 장우환 장진환 박상길 김안조 조강석 목사 등과 러시아 저득수 선교사, 베트남 표영일 선교사 등 수많은 사역자들이 백수읍교회라는 요람에서 길러졌다. 한편으로는 교회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태국에 꼼옴엣교회당과 양비양교회당을 건축하고, 치앙마이선교센터를 후원하는 등 농촌지역의 한계를 넘어 세계선교로 지경을 넓혀왔다.

▲ 이용률 목사(가운데)가 영광지역에서 동역하는 목회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28대 담임교역자로 사역 중인 이용률 목사는 지역을 구원하고 섬기는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되갚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영광 행복의집’이라는 이름으로 재가복지센터를 건립하고, 마을 독거노인들을 방문요양으로 섬기는 중이다. 작년에 개원한 행복의집에서는 재가복지사업 말고도, 5명의 노인들을 센터로 모셔와 24시간 돌보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나이 들고 건강이 나빠져 요양시설로 들어간 교우들을 심방하러 갔다가,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몹시 속이 상했습니다. 조금 힘들어도 직접 모시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재정도 투자하고, 교우들이 요양사 자격도 취득해 행복의집을 열게 된 것입니다. 다른 농촌교회들에게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잘 운영해보려 합니다.”

▲ 영광 백수읍교회는 오래된 역사 속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복음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해온 공동체이다. 영광군선교 110주년 기념탑과 교회의 역사를 소개한 돌비.

외부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운영하는 행복의집 사역은 백수읍교회 온 성도들의 큰 자부심이며, 특히 나이든 교우들이 안심하고 노후를 맞을 수 있는 안전망이다. 그 성실한 마음으로 백수읍교회는 월드비전 어린이구호사업에도 동역하는 중이다.

뿌리 깊은 역사, 자랑스러운 전통, 역동적인 현재. 백수읍교회 가족들은 그 모든 것들을 은혜로 여기며, 하루 세 번씩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한다. 기쁨과 감사의 제목들은 아마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풍성해지고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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