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상단여백
HOME 기획/해설 권혁재 목사의 다시 읽는 희망의 전도서 <대담한 낙천주의자>
해 아래 삶의 진정한 지혜가 담긴, 전도서는 복음입니다[특별기고 / 대담한 낙천주의자] ⑤인생, 희망을 걸만한 거룩한 선물
  • 권혁재 목사(민들레교회)
  • 승인 2018.08.07 22:03
  • 호수 0

열째 마당: 희망, 얼마든지 걸어라(전도서 11:9~12:8)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지혜, 이 지혜로 채비를 갖춘 신자는 이제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으로 불러도 좋다. 이러한 신자라면 언제든지 자기 인생의 순간들 전부를 푸르른 청년의 날처럼 기뻐하며 용감하게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지혜를 지닌 신자라면 여기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희망을 걸만하다는 것이 거듭거듭 확인됐다. 다만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넘어서지만 않도록 경계한다면 말이다(11:9). 

이제 하나님과 그분의 위대하신 섭리를 굳게 믿으니 여기 이 세상에서 모든 정의가 확정되어야만 한다는 그릇된 신념의 악을 제거해 내라. 거기에서 오는 끝없는 근심의 악을 떠나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신앙하면서도 불신하고, 의지하면서도 근심하면서 소중한 인생을 허공으로 날리고 말 것이다(11: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곧 청년)라면 마땅히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을 다 허비한 후 어떤 시도도 이제 허용되지 않는 죽음 앞에서(12:1), 더 이상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인생의 쇠락을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일하심을 기억해야 한다(12:2, 전 3:11 참고). 

죽음에 이르는 쇠락은 이렇게 그려진다. 그렇게도 강하고 날쌔던 팔다리가 후들거려 날벌레 한 마리조차 쫓아내기 힘들다. 곧게 세워 주던 스물여섯 개의 튼튼한 뼈들은 진액이 빠져나가 등허리가 굽는다. 반짝이던 서른두 개 치아들은 닳고 빠져나가 음식을 씹기 힘들다. 그토록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은 백태가 껴 앞이 흐릿하다(12:3). 

또렷이 들리던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청력 감퇴다. 전신의 근력과 기력이 쇠약해져 이제는 일을 손에 잡기가 힘들다. 새벽잠이 없어지는 통에 작은 새소리에도 눈이 뜨인다. 윤택하고 우람하던 음성이 갈라지고 탁해져 쇳소리가 난다(12:4). 

한 때는 높디높은 지붕에도 오르내렸는데 이제는 골이 흔들려 걸상 위에도 못 올라선다. 포탄이 작렬하던 전장에서도 의연했었는데 이젠 길거리의 소음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밤처럼 검었던 머릿결은 시나브로 이슬처럼 하얗게 변했다. 동무를 목말 태우고 힘차게 내달렸었는데 메뚜기 한 마리도 짐이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다. 내가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내 집 문간을 찾을 때가 가까이 왔다(12:5). 

은줄처럼 영롱하던 육신의 생명이 풀려 떠나간다. 금 그릇처럼 찬란하던 육체의 생명이 해체된다. 한없이 길어 담을 것 같던 생명의 항아리가 샘 곁에서 스러진다. 끝없이 달릴 것 같던 생명의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진다(12:6, ‘우물’(보르)은 ‘무덤’으로 볼 수도 있다). 이제 나의 흙은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 순간이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다. 현세와 내세가 모두 다 헛되고 헛될 것이다(12:7~8).  

 

결언(전도서 12:9~14)

 

전도서의 저자는 진정한 지혜자였다. 그래서 깊고 넓은 연구의 결실로써 잠언과 진리의 말씀들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또한 그는 많은 말씀들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의 말씀들뿐 아니라 다른 지혜자들과 스승들의 말씀들 역시 모두 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자는 다른 많은 책들을 저술하고 연구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들을 심비에 깊이 새기고 연구하며 경계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되이 피곤만 가중된다. 

답은 분명하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아, 이분을 경외하면서 그 명령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높이고 즐거워하며, 여기 해 아래의 생애 전 과정을 이분께서 주신 본분으로 받아 영생에 잇대어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생애 속에서 함께 일하시면서 우리의 생애 전체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하여 가심을 믿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해 아래 세상의 생애는 더 이상 무의미한 허비가 아니다. 얼마든지 희망을 걸만한 거룩한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일생 전부가 여기에 맞는지 여부를 평가하신다. 

 

결론: 전도서는 복음이다

전도서는 해 아래 세상과 그 안의 인생사 전부를 다만 ‘허무’일 뿐이라고 고발하는 글이 아니다. 해 아래에서는 희망을 걸만한 가치가 전혀 없으니 신속히 내세 천국으로 도망하자는 사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근거 없는 주장으로 신자의 현세를 장밋빛 융단으로 포장하는 속임수도 아니다. 

전도서는 많은 눈물 골짜기와 어두운 계곡을 신자가 걸어 나갈지라도, 그것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되는지를 거듭거듭 확인시켜 주는 천둥소리다. 현세와 내세를 분리하지 않고, 차안에서 피안으로 도피하게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의 영생 안에서 여기와 저기가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격문(檄文)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라는 지혜, 세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지으시고 그것을 더 나아지게 회복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영접하여 그를 높이고 즐거워하며, 동시에 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신과 해 아래에서 자신의 생애를 영원에 잇대어 존귀하고 즐겁고 대담하게 향유하는 삶이 바로 신자의 인생관임을 본서는 천명한다.     

현세와 영원이 거룩한 가치로 잇대어 있으니 이 지혜를 지닌 신자라면 오늘 여기에서 자신이 살아 내는 모든 일들, 그리고 그것들을 신성한 작품으로 아름답게 완성해 내실 하나님께 대담하게 희망을 걸고 살아가라고 전도자는 격려한다. 이런 확신이 진정 자신의 것이 된 신자만이 그야말로 눈물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전도서는 복음이다. <끝>

 

권혁재 목사(민들레교회) ekd@kidok.com

<저작권자 © 기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혁재 목사(민들레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