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대프리카’, ‘서프리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덥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선선한 바람이 여름의 자리를 꿰차고 나뭇잎에서 푸른색을 불어낼 때면 사람들은 저마다 나들이할 채비를 차릴 것이다.

올해 2월 평창올림픽이 열릴 때만해도 남북관계가 이토록 급진전될 줄은 몰랐다. 남북정상이 두 차례나 만났고 북과 미국이 핵폐기를 두고 의견을 조율했다. 아직 미국의 경제제재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남북관계 역시 평화를 염원하는 바람들 앞에 언젠가 그 칙칙한 색깔을 놓아버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연말의 하이라이트는 금강산 관광 재개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오는 11월 18일은 금강산관광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가 고향이던 정주영 청년은 17세 때 소판 돈 70원을 훔쳐 가출하면서 “언젠가 1000마리 소를 데리고 빚 갚으러 고향땅을 밟겠다”고 맹세했다. 청년은 대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를 띄워 민간인들을 싣고 금강산에 내려놓았다. 금강산 관광은 2003년 9월부터 육로로 이뤄졌고 2005년 6월 관광객은 100만명을 돌파했다.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사망하기 전까지 금강산 관광은 남북화해의 상징이었다.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자 금강산 빌리지 영내에 금강산교회가 세워졌다. 100여 석 규모의 좌석을 구비했고 주일예배와 수요예배를 드렸다. 교회를 배경으로 2001년에는 북한 땅에서 ‘금강산 땅밟기 기도회’와 ‘세미나’를 열었다. 목회자들이 방문해서 부흥회를 했고 ‘남북교회 금강산 기도회 및 성가제’도 개최했다.

금강산교회가 있던 온정리 인근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제20회 총회를 개최했던 금강산기독교수양관이 있었다. 수양관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영성수련의 장으로 사용했지만 불행히도 완공 10년이 채 되지 않은 1941년 일제에 의해 철거당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금강산 관광 재개를 천명했으며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금강산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금강산은 정부와 대기업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그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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