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준비하자 ①4차 산업혁명은 무엇인가

현대 과학기술, 삶의 전 영역서 근본적 변화 강요
교회, 준비 없으면 다음세대 이탈 가속화 우려

제4차산업혁명시대에 돌입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정부는 2017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했다. 각 계에서 4차산업혁명을 대비한 교육과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상반기 기독교계에서 열렸던 학회와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주제도 4차산업혁명이었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이해하고 준비해야 할 바를 생각해 본다. <편집자 주>


제4차산업혁명이란 말은 2016년 있었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나온 단어였다. 세계경제포럼 의장인 독일의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4차산업혁명은 무엇인지 최대한 쉽게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해를 위해서 1~3차 산업혁명과 비교하면 좋겠다. 먼저 산업혁명이란 단어를 붙이려면 생산성에서 비약적 향상이 일어나 삶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어야 한다.

▲ 세계적인 경제학자들과 기업가들은 현재 인류가 제4차산업혁명기에 돌입했다고 말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기존의 정보화 기반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더해 인간에게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2016년 중국과 한국의 바둑고수를 차례로 무너뜨리면서 새시대 기술이 인간의 고도의 지적능력을 대체할 수 있음을 확연히 알려줬다.

1차산업혁명(1760~1840)은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하므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당연히 실업자가 생겨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시간 단축, 서비스업, 실업보험 제도의 탄생이 뒤따랐다. 2차산업혁명(19세기 말~20세기 초)은 전기와 생산조립라인(컨베이어 벨트)의 출현으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대량생산을 의미한다. 컨베이어 벨트는 1910년 발명된 이래 최근까지 제조업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다.

전력과 컨베이어 벨트 구동으로 인해 소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빈부격차는 더욱 커졌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물건을 소유하게 됐다. 같은 물건을 수많은 사람이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과 같은 매체를 통해 정보전달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대중매체들을 통해 동일한 물건 뿐만 아니라 문화(대중문화)도 공유하게 됐다.

3차산업혁명(1860년대 이후)은 반도체와 컴퓨터, 인터넷의 발명으로 정보화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천재적인 기업가들이 나와서 기존의 제품들과 기술을 접목시키는 발상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애플사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로 그는 전화기와 컴퓨터와 MP3를 묶어버렸다. 그리고 빈부격차는 더더욱 커졌다. 그렇다면 요즘 회자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은 한마디로 정보화혁명에 빅데이터가 더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빅데이터란 엄청난 양의 정보라는 것이다. 최신 기술로 어마어마한 정보를 축적하면 사람들에 대한 매우 정확한 분석과 예측을 할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을 사고 싶고, 어디를 가고 싶고,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등을 알아내어 필요를 채워줄 수 있고, 반대로 사람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4차산업혁명은 정보화혁명으로 대표되는 3차산업의 연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3차 산업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자의 경우,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3차 때와 달리 빅데이터 기술이 제조업에 활용되어 이전과 질적 양적으로 다른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시대 빅데이터기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곳은 제조업 분야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테슬라 자동차 공장에는 기존에 있던 2가지를 찾아 볼 수 없다. 첫째 사람이고, 둘째 컨베이어 벨트다. 사람은 3차산업혁명시대부터 대폭 줄어들었던 것이고 진짜 놀라운 것은 100년만에 컨베이어 벨트가 사라진 것이다. 그 자리에 빅데이터 활용 능력(ICT, 정보통신기술)이 탑재된 기계가 자리잡고 컨베이어 벨트 대신 물건을 만들고 있다. 이 말은 이 공장이 최신 시스템을 활용해서 매우 싼 가격으로 빠른 시간 내에 대량생산을 하는가 하면, 반대로 같은 기계를 가지고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제품을 수없이 만들 수 있는데, 제품의 불량률은 ‘0’에 가깝다는 말이다.

더구나 소비자들은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서 앉은 자리에서 자기가 원하는 유일무이한 제품 생산을 요청할 수 있다. 반대로 빅데이터가 활용된 집이나 자동차, 또는 도시 안에서 생활만 해도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가 축적되어 기업체가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와 물건을 먼저 제시해 줄 수 있다.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인공지능로봇이다. 세계최초의 심리치료 로봇인 파로는 이미 빅데이터를 축적하여 주인의 요구를 파악하고 주인과 대화하고 주인의 감정을 치유해주고 있다.

이같은 4차산업혁명이 제조업 등 각 분야를 통해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의 최고치를 정의한다면 ‘정신적 풍요’이다. 이전의 1, 2차 산업혁명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었다. 4차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기반 위에 첨단화된 과학기술을 더해서 인간의 ‘정신적 풍요’를 선사하고 있다. 더불어 지속적으로 발달되고 있는 의학기술로 인해서 인간은 영생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4차산업혁명이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4차산업혁명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물질적 풍요에 더해 ‘정신적 풍요’를 선사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세하락의 위기에 처해있다. 특히 다음세대의 교회 출석률 저조는 심각하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가 타락해서라고만 분석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당연히 거룩해야 하겠지만 교회의 쇠락은 교회에 가지 않고도 세상 곳곳에 있는 풍요를 찾아 이리저리 다닐 수 있게 된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 인공지능에 의해 상담을 받고 인생 고민에 대해 정답을 제공받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보다 더한 매력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신체 교환, 냉동인간, 인간복제, 영생을 주는 신약 등이 개발되는 세상에서 교회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제4차산업혁명은 분명 교회에 큰 도전이며 지금부터 대응해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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