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다음세대 사역에 열정을 가진 사역자들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학교’이다. 바로 좋은 기독교학교를 세워 하나님이 원하시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다음세대로 기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세대들은 시대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자꾸만 ‘다른 세대’로 변질되고 있다. 사사기 2장을 읽다보면 다음 세대에서 변질된 다른 세대가 나온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사사기 2:10)

다른 세대? 여기서 말하는 ‘다른’이란 여러 개중의 ‘또 다른(another)’이란 뜻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다른(different)’이란 뜻이다. 즉 기성세대와 본질적인 부분에서부터 차이를 나타내는 변질된 세대를 의미한다. 이 세대를 대변하는 말이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를 알게 하려면 교육이 필요하고, 교육의 일반적인 장소가 다름 아닌 학교이기에 다음세대 사역자들이 학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미 언급한 숭실대에 대한 조사를 마치면서 기독교학교를 표방한 초중등학교나 대안학교가 상도동에 또 있는지 알아보았다. ‘하나쯤은 있을 텐데’하고 찾기 시작했는데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경기도에는 그렇게도 많은 대안학교가 ‘원조 강남’(?)인 상도동에 하나도 없다니. 놀랍고도 허탈한 마음으로 포기하려던 찰라, 빛줄기 하나가 나타났다.

▲ 사랑빛교회 어깨동무학교의 수업모습.

어깨동무대안학교. 정말 놀랐던 부분은 필자가 시무하는 상도제일교회와 이 학교의 거리가 불과 200m 안쪽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망이 기대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어깨동무대안학교는 미국 남침례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기독교교육에 비전을 품은 윤은성 목사가 대표를 맡은 학교이다. 1999년 국제사역을, 2003년부터는 한국사역을 시작하였다.

어깨동무대안학교의 가장 중요한 교육목표는 한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교육을 통해 하나님과 역사 앞에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갈 인물을 양육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역사 앞에 책임 있는 삶? 직감적으로 이 학교에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다른 기독교 대안학교와 다른 점 두 가지가 특히 흥미로웠다.

첫째는 건물을 지어서 학교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학교를 시작하는 것이다. 다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둘째는 각 교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깨동무대안학교는 전국에 설립되어있지만 일방적이거나 획일적이지 않다. 각 교회의 특성에 맞게 운영한다. 그리고 본사와 지사의 개념으로 운영하거나, 본사에만 목매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옆에서 도와주지만 주도하지는 않는다. 학교의 다른 부분도 신선했지만, 이 두 가지가 제일 맘에 들었다.

숭실대역 2번 출구에서 가까운 사랑빛교회(한규승 목사)에도 어깨동무대안학교가 있다. 규모가 큰 교회는 아니지만, 대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떤 교회보다 큰 교회임이 틀림없다. 어깨동무대안학교를 시작한지는 이제 3년이 되었다. 학생들은 5~7세의 아이들이다.

한규승 목사는 어깨동무 대표 윤은성 목사와 만나 상담하던 중 서로 뜻이 통하여 바로 학교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학교를 시작하며 성도들에게 이렇게 광고했다고 한다. “이왕 아이들 보내는 유치원에 돈을 내는데, 그 돈을 어깨동무에 투자해주세요. 적어도 네 가지만큼은 자녀들에게 확실히 가르치겠습니다.” 담임목사의 이 말에 성도들은 자녀들을 유치원 대신 교회로 보내주었다. 그들은 어쩌면 가장 모험적인 투자를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볼 땐 가장 확실한 투자이다.

한규승 목사가 말한 네 가지는 바로 성경, 역사와 인문학, 영어, 수학이다. 한 목사는 이 4가지만 잘 가르치면 그 다음은 학생 스스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다른 기독교대안학교와 차별화된 점도 역사와 인문학이다. 역사의식과 인문학을 어릴 때부터 배우지 않으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 어깨동무대안학교는 다른 교회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식의 임시방편이 아니라, 기독교 리더를 길러내자는 말 그대로의 대안 추구였다.

타 교단 목사와 오랜만에 긴 통화를 했다. 지루하지 않았다. 필자와 한 목사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독교교육은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하나로 연결될 때 가장 확실하다는 것에 서로가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대안학교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고 겸손히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머릿속의 생각을 현실에서 실천한 그에게 진짜 한 수를 배웠다. 그 시원함의 정도를 이 무더운 여름에 냉수 한 그릇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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