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사설
[사설] 지방 신학생들을 살려야 한다

신학이란 말 그대로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그러나 그 신학의 내용을 좀 더 정확히 규정하는 말로서 신학이라는 명사보다는 ‘신학함’이라는 동명사로 사용함이 더욱 좋은 것 같다. 독일어로 신학이란 말 ‘Theologiren’이 신학이라는 명사어보다는 ‘신학함’이란 동명사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학이란 사변적인 학문성에서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인간이 고통 받던 역사의 현장에서 비롯되었다. 곧 애굽에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하나님의 출애굽역사와 죄악으로 어두워진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 승천 및 성령의 오심으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을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 대한 것이 신학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 자녀들의 고난 받는 현장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밝히는 작업이 신학의 목적이다.

따라서 신학이란 머리의 학문이 아닌 마음의 학문으로 우리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우리의 인격으로 구현하는 학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이론적 학문이 아닌 실천적 학문이기에 신학도가 된다는 것은 ‘신학함‘을 자기의 삶속에서 경험하며 실천하는 배움의 사람들을 말함인 것이다. 신학도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기성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이 시대와 역사의 위기성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배우는 자들이다.

이렇게 소명 받고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는 지방 신학교가 우리 총회 안에는 10여 개가 있다. 여기에서 졸업하는 학생들은 총신대학교 운영이사들로 구성된 총회 신학에 입학하여 소정의 과정을 이수케 한 후 졸업과 함께 본 교단 목회자의 길을 걷게 해야한다. ‘총회신학’이란 이름으로 운영해야 교육인적자원부의 간섭을 피할 수 있고 지방 신학의 설립목적에 부합한 사역자들을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지방 신학교는 총회 1만 교회 운동의 동력을 제공한 목회자 양성기관으로 명실공히 교단 발전에 큰 몫을 하였다.

그런데 2018년이 되면서 지난해 졸업한 지방 신학생들이 총신사태와 맞물려 관계기관에 투서한일로 총신입학이 막혀 진학을 못한 상황에 있는데도 속수무책인 가운데 7월을 지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총회는 총회 신학을 정상화하여 지방 신학생들에게 길을 열어 주어야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지방 신학교도 총회인준 신학교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10여 개의 지방 신학교 졸업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어 소명자의 길을 가게 해야 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저작권자 © 기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