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개혁주의 모델 박윤선 목사 ⑤그를 기념하는 것들

소천후 합동신대원에 안장, 묘비엔 “내일 일 염려말라” … 예장합신 중심, 신학과 삶 기려

정암 박윤선 목사의 묘소는 수원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총장:정창균 목사) 본관 뒤편에 있다.
녹음 사이로 나 있는 정감있는 산책로를 따라서 조금만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묘소는 아담했고 봉분은 낮았다. 표지석은 묘소를 찾는 사람을 향해 우뚝 서 있지 않았고 하늘을 바라보며 땅에 누워 있었다. 묘소의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도 없었다. 악천후라도 날 경우 묘소가 훼손되지 않도록 둘러싼 죽담마저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 경기도 수원시 합동신대원 본관 뒷산에 조성된 박윤선 목사의 묘소는 그를 닮아 소박하다. 나즈막한 봉분이 인상적이다.

묘비에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와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 116:15)가 적혀 있다. 마태복음 6장 34절은 박윤선 목사가 가장 좋아하던 성경구절이었다. 박윤선 목사는 생전에 고난을 많이 겪었으나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시편 116편 15절은 생전에 박 목사를 도와 주석완간에 숨은 역할을 담당했던 고 이창숙 권사가 원했던 구절이었다. 박윤선 목사는 과거 이 시편 본문을 가지고 ‘성도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박 목사는 “어떤 의미에서 성도의 죽음이 귀중한가”라고 질문하고는 “첫째 가장 완전한 신앙고백의 기회이기 때문에 귀중하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신자가 임종시에는 자기의 생명을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면서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면서 “그 기회야말로 신자가 예수님을 본받는 결단의 순간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박 목사는 “둘째 구원의 관문이 되기 때문에 귀중하다”면서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구원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며...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찬송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 합동신대원 도서관 2층에는 <박윤선 목사 사료보존실>이 있다. 필생의 작업 <성경주석> 연판.

합동신대원에 모신 묘소

박윤선 목사는 1974년 은퇴한 후 위궤양과 담석증으로 고생했다. 1988년 5월 건강은 악화되어 식사와 수면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병리검사 결과 간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으며 간과 담낭을 연결하는 담즙관이 막혀 있었다. 박 목사는 6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그달 30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박 목사는 마지막 때를 보내면서 두 가지의 죄를 고백했다고 한다.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를 ‘기도의 사람’이라고 부를 때 이것을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일본의 점령기에 미국에 가서 유학한 것이 박해를 피해 도망한 것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기력이 조금 들어오면 기도했고 문병을 온 사람들은 병실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 같은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박 목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박 목사는 병실에서 죽기보다 기도원에서 기도하다 죽겠다면서 퇴실을 요청하기도 했다.

박 목사 사후 유족들은 시신을 기독교 공원묘지에 안장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합동신대원 교수와 이사회의 간곡한 권유로 학교 뒷산으로 결정했다. 박 목사를 모심으로 합동신대원은 그의 사상과 영성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됐다. 박 목사의 묘소는 신학생들의 기도 장소가 되었고 합동신대원을 찾는 모든 이들이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참배객들은 너무도 소박한 그의 묘소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묵상할 수 있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중앙로 50(원천동) 문의: 031)212-3694(합동신대원 총무과)

▲ 합동신대원 도서관 2층에는 <박윤선 목사 사료보존실>이 있다. 필생의 작업 <성경주석> 연판.

박윤선 목사 사료보존실

합동신대원 도서관 2층에는 <박윤선 목사 사료보존실>이 있다. 2017년 6월에 열었다. 교내에 있던 자료, 그리고 동문과 교수들이 소장하고 있던 물품들을 모아 박윤선 목사를 기념하고 있다. <성경주석> 전권의 연판, <성경주석>을 작성했던 타자기, 녹음장비가 있다. 최초의 <성경주석>이었던 요한계시록 주석 초판본(1949년), 고신대 교수 시절에 사용했던 1930~1940년대의 강의안을 비롯한 교수자료들, 저서, 박사학위증, 엷은 청록색의 양복 상하의, 여름 모시옷, 4남 박성은 박사가 쓴 임종 관찰기도 있다. 그리고 박 목사를 대표하는 친필휘호들, 즉 ‘기도일관’, ‘진실노력’, ‘지사충성’를 보면서 그의 힘찬 필체를 느낄 수 있다.

박윤선 목사는 유언으로 “유품을 남기지 말고 태우라”고 했다. 때문에 남아있는 사료들이 비교적 적은 편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료실의 크기는 3평 내외로 협소한 편이지만 앞으로 더 확대할 계획이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가 지난 제100회 총회에서 박 목사에게 기증한 감사패다. 패는 “귀하는 이 땅의 신학적 기초가 정착되지 못했던 혼란기에 본 총회가 역사적 칼빈주의장로교 신학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교단 신학의 정초를 닦으셨다”고 밝혔다. 사료보존실 운영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문의: 031)212-3696.

도서출판 <영음사>

박윤선 목사에 대한 기록을 가장 잘 축적하고 있는 곳은 도서출판 <영음사>라고 할 수 있다. 박윤선 목사의 <성경주석>을 출판하기 위해서 1954년 부산에서 <성문사>라는 이름으로 창립했다. 사업 가운데 <성경주석> 완간은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는 족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79년 <성경주석>을 완간하여 양장 20권으로, 이후 36권 한세트의 보급판으로 30년 넘게 널리 보급했다.

▲ 합동신대원에서 강의했던 강의안 등 100여 점의 사료를 만날 수 있다.

2004년 설립한 정암문서선교회의 후원 아래 인도네시아어로 주석을 2권 번역 출판했고 2013년 이래 <창세기>를 비롯 4종의 주석을 중국어로 발행했다. 박윤선 목사 자서전 <성경과 나의 생애>, 설교집 <정암메시지 시리즈>, 140여 명이 박윤선 목사를 추억한 <박윤선과의 만남>, 최근에는 박 목사의 성경주석 전권 내용을 축약해서 단권 <정암 박윤선 주석성경>을 출판했다. 이밖에 다양한 신학 서적과 설교집 등을 펴내고 있다.

영음사는 박윤선 목사에 관한 출판물을 꾸준히 발간하므로 후대가 그를 기억하게 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영음사는 1996년 기독교출판협회와 서점협회로부터 공로패, 2013년에는 목회자료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영음사는 2011년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사옥을 구매했다. 앞으로 영음사는 1억 중국 크리스천들을 상대로 문서선교를 펼칠 계획이다. 박윤선 목사가 육성으로 남길 설교와 강의들도 계속 출간할 예정이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경수대로 369번길 20, 연안빌딩 4, 5층 전화: 031)233-1401, 1402

정암신학연구소

박윤선 목사의 신학사상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정암신학연구소’(소장:안상혁 교수)도 감당하고 있다. 1993년 합신 교수회의 결의로 설립한 이래 매년 ‘정암신학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개혁신학에 입각한 신구약 성경 해석의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정암신학강좌는 1989년부터 2017년까지 29회를 진행했는데 제1회를 충현교회에서 열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제1회 정암신학강좌에는 합동신대원 교수와 총신대 교수가 각각 3명씩 주제발제를 했고, 논평도 각각 3명씩 두 학교에서 사이좋게 감당했다.

초창기에는 박윤선 목사의 신학과 삶을 주제로 삼았고 점차 한국교회 전체가 살펴봐야 할 주

제들로 지평을 넓혀왔다.

이밖에 박윤선장학회(이사장:박영선 목사)는 실력있는 신학생을 격려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박윤선 목사를 기념하는 일들을 합동신대원을 운영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에서 주로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목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총신대에는 특별한 기념행사가 없다.

한편 합신교단은 박윤선 목사 소천 30주년을 맞는 올해 교단 차원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박윤선 목사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정성구 박사(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는 박 목사 소천 30주년을 기념해 <나의 스승, 박윤선 박사님>(근간)를 펴낼 계획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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