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교회자립의 왕도 ④지역과 상생·협력 강화

배넘실교회 … 산정현교회 전폭적 동역 속 예수마을 일궈
함평전원교회 … 도농상생 적극 활용, 생명의 울타리 만들다
시목교회 … 주민의 삶과 애환 다독이는 사랑의 목회 실천

연속기획 ‘교회자립의 왕도’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교회는 진안 배넘실교회(이춘식 목사)와 함평 전원교회(서종석 목사) 그리고 태안 시목교회(한성희 목사)이다. 이 교회들은 농어촌 지역에 터를 잡았다.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직면해 있고, 경제기반인 농어업이 무너지는 상황에 처해 있다. 존폐의 위기 속에서 배넘실교회 함평전원교회 시목교회는 ‘마을 공동체’를 품었다. 복음 안에서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섬기고 삶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펼쳤다.

그 결과 배넘실교회와 함평전원교회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목하는 공동체로 인정받고 있다. 시목교회 역시 지역을 살리는 교회로 든든하게 서가고 있다. 몇몇 이들은 교회가 갖춘 풍성한 규모와 활발한 사역을 보며, “내게도 저런 기회와 환경이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텐데...”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대목이 있다. 이 교회들 모두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었고, 치열하게 역경을 극복하는 시간과 이를 이끈 담임목사의 눈물겨운 희생, 그 외로운 투쟁을 공감하며 기꺼이 응원에 나선 도시교회의 동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배넘실교회는 산정현교회와 협력하며 새로운 교회 생태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배넘실교회

배추목사. 20여 년 전 이춘식 목사에게는 이런 별명이 붙었다. 당시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값 폭락으로 많은 농민들이 애지중지 가꿔온 밭을 갈아엎던 상황이었다. 눈에 초점을 잃은 이웃들을 겨우 만류한 후 이 목사는 그 배추들을 차에 실은 채 도시로 나가 밤늦도록 팔았다. ‘배추목사’는 목회자의 본분을 잃었다며 주변인들이 가한 일종의 조롱이자 비난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의 시선에서는 ‘일탈’이었던 목회자의 과감한 결단과 행동은 어수선했던 동네 민심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얼마 후 용담댐 건설로 삶의 터전마저 잃고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던 주민들은 어려운 고비마다 자신들의 편이 되어준 목사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배넘실교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간신히 수몰을 면한 금지마을과, 대대로 살아온 고향에서 추방돼 실향민 신세가 된 양지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금양교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일으켰고, 담임목사는 이들을 먹여 살리고자 동분서주했다. 월드컵기념품인 도자기 장구를 제작하는 사업도 해보고, 주민들을 데리고 해외 선진농업 현장을 견학하며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다.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풀린 것만은 아니었다. 사업 실패로 엄청난 빚을 떠안는가 하면, 마을 안에 풀기 힘든 갈등이 생긴 적도 있었다. 이 목사 본인은 결국 병이 났고, 담임목사 사임 압력까지 받았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마을 분위기도 다독여 친환경농법 도입을 시작했지만 문제는 판매망이었다.

이 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좋은 벗으로 다가온 존재가 바로 서울 산정현교회(김관선 목사)였다. 한국농선회의 주선으로 결연을 맺은 양 교회는 도농직거래를 통해 한편에서는 안정된 농산물 판로를, 다른 편에서는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농촌봉사 상호방문 등 가능한 모든 형태의 협력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교회 간 도농교류의 대표적 사례로 부각될 수 있었다.

산정현교회와의 전폭적인 동역 속에서 이름까지 바꾼 배넘실마을과 배넘실교회는 점점 크게 자라갔다. 가족농장 친환경레스토랑 황토방처럼 새로운 시설들이 연달아 들어섰고, 정부로부터 ‘가고 싶은 100대 농촌마을’로 선정되었다. 마을복음화도 꾸준히 진척되어 전체 주민의 85% 가량이 교회에 나오는 가운데, ‘예수마을’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도 가동했다.

이에 멈추지 않고 최근에는 해바라기농장 유채꽃축제 등을 통해 수 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소문난 동네로 변신하고 있으며, 장차 통일한국을 위해 크게 쓰임 받는 공동체가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준비하는 중이다.

이춘식 목사는 “산정현교회와 협력을 통해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동반성장하는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면서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자립을 넘어 공교회성 회복을 통한 건강한 교회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고, 총체적 생명망(web of Life)을 구축하는 밑거름”이라고 강조한다.

▲ 지역 주민들은 이춘식 목사를 배추목사로, 서종석 목사를 달걀목사로, 한성희 목사를 닭목사라고 불렀다. 목사로서 자존감이 상할만한 별명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별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희망을 잃은 주민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헌신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함평전원교회는 농어촌 교회의 미래를 앞서서 걸어가고 있다.

함평전원교회

달걀목사. 서종석 목사의 과거 별명에도 설움과 모멸감이 배어있다. 함평전원교회 부임 초기 교회자립을 위한 첫 시도로 유정란 생산을 시작했고, 직접 오토바이에 계란을 싣고 꾸불꾸불한 고갯길을 넘어 도시까지 배달을 다녔다. 나름 도농상생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시작했지만, 당시만 해도 ‘목회자가 왜 장사하고 나서나’라는 싸늘한 시선이 존재했던 것이다.

함평전원교회의 전신인 석창중앙교회에 서 목사가 부임하던 30년 전, 마을환경의 모든 지표는 절망적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가 흰 노인들만 남아 노동하는 들판, 채 스무 명도 안 되는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하루에 몇 차례 들어오지도 않는 버스. 어떤 경제적 기반이나 문화적 혜택도 마련되지 않는 최악의 여건이었다.

교회 문을 닫는다 해도 누가 말리기 힘든 수준이었다. 실제 도시교회에서 여러 차례 청빙이 있어 서 목사에게는 미련 없이 떠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농촌에 대한 애정을 품고 사역을 시작했던 그의 마음을 주변 환경들이 결정적으로 흔들지는 못했다.

‘죽을 각오’로 목회에 임했다. 마을을 살리고,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무엇이든지 찾아가 배웠다. 전도도, 섬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발견한 활로가 친환경농업이었다.

이웃 대성교회(박윤식 목사)와 함께 오리농법과 쌀겨농법 등을 적용한 친환경 쌀농사를 교우들 중심으로 시작했다. 마침 유기농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던 함평군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친환경농업협의회 손불지회’가 탄생했다. 19농가로 시작한 이 사업이 쏠쏠한 성과를 거두자 점차 일반 농가들의 참여까지 확산돼, 5년 후에는 4개 단지에서 55농가가 함께 하게 됐다.

역시 관건은 판로였다. 인근 광주와 목포 나아가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도시의 교회들을 대상으로 다각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함평노회에서도 농어촌선교회를 조직하며 함께 발 벗고 나섰고, 그 몸부림에 응답하는 도시교회와 성도들이 점차 늘어났다.

2010년 결성된 ‘도농울영농조합법인’은 직거래 장터운영과 인터넷 판매사업 등을 통해 농촌교회의 생산자와 도시교회의 소비자를 이어주는 훌륭한 연결망 역할을 하고 있다. 서 목사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총회자립개발원 광주전남지역위원회(위원장:이상복 목사) 등과 함께 도농교회 직거래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하는 중이다.

서종석 목사는 “도시교회의 풍부한 인력과 자원들을 농촌교회의 생명환경과 연계해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이 시대 교회들이 실천할 중요한 사명”이라면서 전국 교회에 “직거래는 물론이고 도농교회 간 협력으로 복지시설을 운영하거나, 주말농장 영성프로그램 별자리교실 같은 활동을 전개하는 방안도 모색해 보자”고 제안했다.

시목교회

한성희 목사도 별명이 있다. 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병아리를 분양하고 닭장을 지어주면서 ‘닭목사’로 불린다. 한 목사는 이상한 별명을 싫어하지 않는다. “맡겨진 작은 일에도 기쁨으로 최선을 다했더니 그 일을 통해 사역으로 연결시켜 주셨으며 교회를 세워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 시목교회 한성희 목사는 사랑으로 주민들의 삶 속에 복음을 심고 있다.

한성희 목사는 2011년 성탄절에 시목교회에 부임했다. 성도가 10명인 전형적인 농촌 미자립교회였고, 한 목사 역시 농촌목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준비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원리를 따른다면 기쁨으로 목회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다윗의 신앙과 삶에서 목회 원리와 전략을 배웠다.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고(삼상 17:34~35), 자원해서 일하고(삼하 17:32~33), 익숙한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삼하 17:39~40)이다.”

닭목사라는 별명도 이 원칙에서 나왔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니 키워보라고 병아리 25마리를 받았다. 예배당 인근에 울타리를 만들고 방사해서 키웠다. 건강하게 자란 닭은 건강한 달걀을 낳았고, 고령에 큰 수술을 하시고 입맛이 없어하시는 주민에게 신선한 달걀을 드렸다. 달걀을 전하면서 교제를 하게 됐고 결국 전도로 이어졌다. 이 경험을 지역의 다른 목회자들에게 이야기하면서 병아리를 분양했다. 경험을 살려 닭장까지 만들어 주었다. 다른 교회뿐만 아니라 귀농한 주민들에게도 병아리를 분양하고 닭장 제작을 도와주었다. 이 사역으로 9가정 17명이 시목교회에 등록을 했다.

고령화되고 안정적인 판매 방법이 없어 힘겨워하는 성도님들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부교역자로 시무했던 평택세교중앙교회의 협력으로 직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일을 계기로 도시 교회들과 농산물 직거래 사역을 펼치게 됐고, 농촌교회를 후원해 주시고 섬겨주시는 고마운 도시교회에 김장배추로 보답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김장배추 나눔축제는 1200포기로 시작하여 작년에는  4500포기를 나누는 축제로 발전시켰다. 이 모든 사역들은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자원해서 일하고 익숙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목회원리가 빛을 발한 것이다.

한성희 목사는 시목교회와 지역을 섬기는데 있어서 평택세교중앙교회 구월동교회 동암교회 샤론교회 안양대광교회 공항성산교회 서초동사랑의교회(사랑의119, 이웃사랑선교부) 늘푸른사랑의교회 영등포제일교회 회복의동산교회 전주팔복교회 헵시바순복음교회 만남의교회 등 많은 도시 교회의 협력이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현재 시목교회는 농산물직거래, 수확의 즐거움이 있는 농촌체험여행, 건강한 먹거리가 있는 농촌체험여행 등 농촌과 도시 교회가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는 사역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목회원리를 잊지 않고 교회와 지역을 섬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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