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모든 교회들의 고민 중 하나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시니어세대를 어떻게 하느냐이다. 고령화 사회란 65세 이상의 시니어 비율이 높아지는 사회를 말한다. 국제연합(UN)이 정한 바에 따르자면, 시니어 인구의 비율이 전체의 7% 이상일 때에는 고령화 사회, 14%이상일 때에는 고령 사회, 20% 이상일 때에는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7%를 넘어서며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이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0년에는 고령 사회, 2026년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몸서리(떨림) 칠 것인가? 몸부림(부딪침) 칠 것인가? 이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며, 교회의 사명이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WWJD)?’

상도동 일대에 카페가 몇 개나 될지 궁금해 알아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시니어 세대들이 갈 수 있는 카페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시니어들을 환영하는 카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흔히들 자본주의 사회인데 정당한 값만 지불하고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 속칭 ‘물(분위기)이 좋아야 한다’는 카페 운영자들의 암묵적 계산이 바로 그것이다. 노인들이 들락거리면 카페의 물이 흐려지고, 결과적으로 젊은 고객들이 드나들기 꺼린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 우리 조국과 가정을 위해 수고한 어른들, 교회에서 열심히 섬겨온 믿음의 선배들이 맘 놓고 다닐 카페 하나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 전역으로 범위를 넓혀보니 두 군데에 시니어카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찾아가보니 지역 주민센터를 개조해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있고, 벽은 과거 초등학교 교실 분위기에다, 메뉴라고는 동전을 넣고 빼먹는 믹스커피가 전부인 수준이었다. 이런 장소에 시니어세대들은 둘째 치고, 해당 직원들조차 이용할리 만무했다.

▲ 상도제일교회당 4층의 ‘카리스’ 카페는 상도동 일대의 유일한 시니어카페이다.

모름지기 시니어카페라면 분위기, 가격, 맛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시니어카페를 열기로 했다. 예배당에서 가장 좋은 공간인 4층을 리모델링하고, 카페이름을 ‘카리스(은혜)’라고 지었다. 부디 은혜로운 대화가 오가는 곳, 은혜의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이름에 담았다. 그리고 정말 그 이름대로 되었다.

카페의 외관을 마련하는 일은 교회가 부담했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일은 오로지 성도들의 은혜로 감당했다. 카페 안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최고의 안마기 두 대, 건강을 체크하는 인바디 기계, 그리고 병원에서 쓰는 혈압계가 찬조물품으로 들어왔다. 시니어 세대들이 자신들을 위한 공간이라며 거금을 모아주었고, 그 섬김을 통해 카페 테이블과 의자를 들여왔다.

카페의 섬김이들은 모두 자원봉사자이다. 다들 초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제법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 이분들의 섬김 덕택에 메뉴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는 모든 고객에 1000원으로 제공하고. 다른 메뉴 가격들은 모두 2000원으로 확정했다. 그런데 65세 이상의 이용자들에게는 2000원대 메뉴들도 50% 할인을 해드린다. 결국 시니어세대들은 1000원으로 어떤 메뉴도 즐길 수 있다.

필자는 ‘카리스’에 가면 두 가지 행복을 느낀다. 첫째는 담임목사가 출입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자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고, 둘째는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이 시니어카페 운영에 대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한 상도제일교회의 몸부림으로 해석해주시는 것이다.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다른 교회에서 우리 카페를 방문하여 제일 많이 묻는 질문이 ‘이렇게 하면 하루에 얼마나 남느냐’는 것이다. 그 질문에 우리는 약간 뜸을 들인 후 ‘무조건 남는다’고 대답한다. 많은 재정적 이익이 남는 것이 아니라 오고 가시는 ‘사람’이 남고, ‘이미지’가 남고 ‘성도의 수고’가 남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니어 카페 ‘카리스’는 무조건 남는 장사다. 몸부림친 것만큼 남는다. 이렇게 좋은 장사가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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