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강남’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교육열이 가장 높은 곳, 잘 사는 동네, 땅 값이 비싼 지역 등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강남의 모습이다.

좀 갑작스런 이야기 같지만 ‘강남의 원조는 상도동’이라고 한다면 누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강남’에 살고계신 분들은 여기에 동의할까? 개인적으로 상도동에 대한 지역조사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누가 믿든지, 안 믿든지 바로 상도동이 강남의 원조라는 사실이다.

‘강남(江南)’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강 이남을 통틀어 일컫는 말인데, 오늘날에는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 등 속칭 ‘강남 3구’를 일컫는 말처럼 범위가 좁아져버렸다. 아무튼지 이제부터 강남의 역사를 살펴보자.

강남은 본래 서울시 소속이 아니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서울시에 편입되었다. 그 때까지 강남 일대는 고요한 농촌이었을 뿐,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초기인 6월 27일 밤에 한강인도교가 폭파되자, 그때까지 미처 후퇴하지 못했던 다수의 군인과 민간인이 한남 서빙고 뚝섬 등의 나루터에서 배로 도강하여 남쪽으로 내려왔다.

전쟁 후에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교통사정은 아직 좋지 않았던 무렵에, 시민들의 중요 식자재인 채소 공급은 강남지역에서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한강의 남북을 오가는 나룻배마다 채소보따리들로 가득 찼다고도 전해진다.

강남초등학교도 강남이 서울시로 편입되기 이전에 세워졌다. 1941년 4월 1일 강남심상소학교로 개교한 강남초등학교는 지금도 서울시 동작구 상도1동 501번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제23대 이병화 교장이 봉직하는 중이다. 지난해 2월 17일 제70회 졸업식을 거행했는데 이때까지 졸업생의 누계가 4만1655명이나 된다. 졸업생들에게 본인이 강남초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제법 자랑스러운 일일 것이다.

▲ 강남교회 설립 초창기 모습.

우리 교단 소속으로, 젊은이들에게 많은 신앙적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인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역시 지금 우리가 아는 그 강남에 존재하지 않는다. 1954년 4월 18일 부활주일 아침에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57번지의 강남여자고등공민학교 건물에서 함흥동부교회 출신 피난민 김재술 김모형 최기주씨 등과 북주동교회 출신 피난민 김시완 이약순씨 등 16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린 것이 강남교회의 시작이다.

강남교회라는 이름은 미래를 보고 지은 이름이 아니었다. 당시 그 동네를 강남이라 불렀기에 자연스럽게 지명에 따라 교회 이름을 정한 것이다. 지금도 강남교회는 상도동과 인접한 노량진 1동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강남이라고 부르는 지역의 당시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 무렵의 풍경을 담은 여러 사진자료들을 살펴보았는데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농부의 모습, 길도 제대로 닦이지 않은 동네에서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등 지금의 강남 풍경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힘든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기에서 1970년대 전반기에 걸쳐 강남지역 일대에는 ‘공간혁명’이라 부를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의 범위도 현재의 강남구에서 강서구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전개될 정도로 매우 넓었고, 마침내 1975년 10월 1일 서울시 강남구가 신설된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의도는 지금의 상도동을 다시 강남으로 불러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강남을 부인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도동이 오래 전 강남의 중심이었다는 자존심을 간직하자는 것이며, 지금의 강남지역 또한 과거의 모습을 잊지 말고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자는 것이다. 두 지역이 합력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선하게 이루어가는 모습들도 나타났으면 한다.

문득 과거에 참 많이 불렀던 찬양이 생각난다. “이 세상은 날이 갈수록 악해져가고, 온 거리마다 넘쳐나는 죄악의 물결. 오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자. 오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상도동과 강남,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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