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행보, 냉철히 회고하다

 <한 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류대영 지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간)는 잘 읽히는 문장과 저자 특유의 관점을 갖춰 독자를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

저자는 한국교회에는 ‘민중적 신앙’과 ‘민족적 신앙’이 병존해 있다고 전제했다. 민중적 신앙은 영혼 구원과 교회 건설에 관심이 있었다. 민족적 신앙은 문명개화와 독립자강에 뜻을 더욱 두었다. 두 흐름은 큰 맥락을 유지한채 흘러오면서 중첩되기도 하고 교차되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기독교 신앙공동체는 자국민이 선교사의 포교 전에 성경을 읽음으로 시작했다. 1874년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는 의주를 방문해서 백씨 성을 가진 한 중년의 상인을 만났다. 그에게 한국어를 조금 배운 뒤 한문성경과 전도책자를 나누어주었다. 의주 상인은 집에 돌아가서 로스에게서 받은 책을 아들 홍준에게 전해주었고 백홍준은 그것을 친구들과 돌려 읽었다. 그들이 잉커우에 있던 맥킨타이어 선교사를 찾아가서 세례를 받았고 개신교 최초의 신자들이 되었다.

1880년대 후반 각 교파를 배경으로 한 개신교 선교사들이 앞다투어 들어오면서 교회는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많은 교파들이 형성될 수 밖에 없는 유전인자를 갖게 됐다. 교회는 초창기에 미약했으나 열강들의 틈바구니, 특히 일제의 침탈 위협 앞에서 민족의 희망이 되었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편에서는 절망적인 현실을 견딜 영적 위안을 제공했고, 다른 편에서는 민족의 독립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 이후 전쟁과 경제성장, 민주화운동 등의 격변을 거치면서 백성들은 피난처가 절실했고 교회는 거기에 부응함으로 성장했다.

교회는 성장하면서 기득권 세력 가운데 하나가 됐다. 특히 민중적 신앙을 가진 소위 보수교회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서 무슨 일을 하든지 비판하거나 저항하지 않았고 축복했다. 민족적 신앙을 가진 진보적 교회도 과거 신사참배에 곧바로 찬동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통해 민족적 정서와 괴리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 전자는 이기주의적 기득권 세력으로 치부되어 사회의 신뢰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후자는 기존 사회세력에 운동의 주도권을 많이 흡수당했다. 오늘의 교회는 공통적으로 교세감소와 사회적 영향력 쇠퇴를 염려하고 있다.

저자는 ‘어느 쪽이 좋았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자’와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는 “매일 역사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그 지평 위에 복음의 빛이 비춰주는 미답(未踏)의 새 길들을 얼마나 용감하게 걸어갈 것인가에 한국교회의 앞날이 달려 있다”고 책의 말미에서 말했다. 저자는 교회 성장은 ‘교회 성장’이라는 이기주의에서 헤어나올 때 가능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노충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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