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476년 서로마가 야만족들에 의해 멸망한 후 동로마는 정통성을 계승하며 비잔틴 로마 제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비잔틴의 명칭은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옛 이름 비잔티움에서 유래했다. 비잔틴 제국은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로마제국이라는 뜻이다. 비잔틴 제국 비잔틴 로마 제국 동로마제국 등은 모두 똑같은 제국을 가리키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을 엄밀히 논한다면 주후 5세기에서 1453년 5월 29일 멸망하기까지 천년을 가르킨다.

비잔틴 제국의 최고 전성기는 5세기였고 이후는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 비잔틴의 역사이다. 그 절정의 시기 역사는 다음과 같다. 앞에 기술한대로 서로마제국이 476년 멸망하고 있을 때 동방에서는 제노 황제가(474-291)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가 다스리던 시절은 야만족의 침입은 물론이고 교회는 여러 공의회로 분열을 거듭하여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황제 제노는 칼케돈파와 비칼케돈파로 나뉘어져 다투고 있는 제국의 분열을 치유하려고 연합령(Henotikon)을 내린다.

그러나 이 시도는 양측의 반대로 무산되지만 그의 이러한 노력은 동로마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491년 제노 황제는 죽음을 맞는데, 일설에 의하면 음주로 정신병이든 제노를 황후 아드리아네가 산채로 관에 넣어 죽였다는 것이다. 제노가 죽자 황후는 존경받는 궁정관리였던 아나스타시우스를 비잔틴 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한다. 아나스타시우스는 야만족으로 서유럽에서 프랑크 왕국을 이룬 클로비스에게 왕관을 씌워준 사람이었다. 자식이 없던 아나스타시우스는 자신의 후계자를 놓고 고민하던 끝에 세명의 조카 중 자신이 부르면 제일 먼저 오는 자에게 황제의 위를 물려주기로 하고 세명을 동시에 부른다.

다음날 궁궐에 가장 먼저 입성한 조카가 유스티누스(Justinus.c.518~527)였다. 이 사람은 돼지를 기르는 집안에서 자라나 군인으로 성공한 자였다. 518년 아나스타시우스 황제가 죽자 당시 친위대장이던 유스티누스는 황제의 위에 오른다. 그의 나이 68세 때였다. 유스티누스는 제위에 올라 9년을 통치하고 그의 조카에게 물려주는데 이 사람이 바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483-565)였다. 이 때가 비잔틴 로마제국이 최전성기였는데, 유스티니아누스를 대제로 만든 것이 그의 황후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 이름을 가진 데오도라(Theodora 500-548)였다. 데오도라는 52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한 청년을 만나는데 그가 바로 장군 유스티니아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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