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권 목사(대구 대봉제일교회)

▲ 윤성권 목사(대구 대봉제일교회)

작년 일이었다. 제102회 총회를 앞두고 담임목사가 총회에 총대로 참석한다는 광고가 나간 이후 어느 날, 집사님 두 분이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목사님 교단 총회가 뭐하는 곳입니까? 총회에 가시면 뭘 하시는가요?” 이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해 주었다. “예, 회의 하는 곳이죠. 회의 합니다”라고. 사실 이 대답 밖에 할 말이 없었기도 하다.

총대 자격으로 그동안 10회 정도 참석하면서 남는 것이라곤 회의를 한 기억 밖에 없는 것 같다. 하루 종일 회의만 하는 곳이 교단 총회인가? 그렇다면 무슨 내용을 갖고 회의하는가. 누구를 위한 회의이며, 어떤 목적으로 결정한 회의인가. 어석하게도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모른 채 그냥 주어진 순서에 따라 회의에만 참석하고 왔던 기억밖에 없다.

이제 본 교단 총회가 9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아마 작년에 필자에게 질문하신 집사님들이 금년에도 담임목사가 교단 총회에 총대로 참석한다는 광고를 보면 똑같은 질문을 하실지 모르겠다.

집사님들의 이런 질문에 금년에는 명확하게 “예, 교단 총회는 이런 일을 하는 곳입니다. 저는 이러이러한 결정을 하기 위해 회의를 하려고 총회에 참석합니다”라고 대답해 주고 싶음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아직도 명료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조용히 광고 없이 총회에 갔다 올까? 아니면 그 집사님들과 마주치지 말까?”하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쓴 웃음을 지어본다.

교단 총회는 그야말로 ‘회의(會議)’하는 단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무엇을 회의 하는가’ ‘어떤 결론을 얻기 위한 회의’인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교단 산하 교회들과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밝혀야 하지 않을까? 총회에 참석하면서 드는 생각 중에 하나가 있다. 너무 많은 회의, 수많은 결의가 노회와 교회나 성도들의 건덕과 신앙 함양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나 노회 혹은 자기집단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 말이다.

회의를 위한 회의가 아니라 치열한 논쟁이나 사례 분석을 통한 합리적인 토론을 거쳐 결정되는 회의, 그래서 그 결과 앞에 모두가 만족해하며 그 결과를 따를 때 주어질 은혜와 유익을 기대하면서 각자 섬기는 사역의 현장으로 기쁨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회의를 우리는 언제쯤 해 볼 수 있을까? 이런 씁쓸한 마음이 총회를 기다리며 드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모름지기 1년에 한 번 모이는 교단 총회는 생산적이고, 각 노회와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보다 명확하게 간직하게 하는 일들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정하는 회의를 해야 한다. 회의를 위한 회의, 누군가를 죽이는,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회의가 아닌 진짜 회의 말이다.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난 ‘예루살렘 총회’를 묵상하면서 교단을 사랑하고 교단 총회가 그야말로 입버릇처럼 말하는 ‘성(聖) 총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해본다. “하나님, 본 교단 총회도 예루살렘 총회처럼 진리를 사수하는 총회 총대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총회, 명확한 구원의 복음을 제시하며, 총회의 결정이 진리가 아니라 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노회와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이 기울어지게 하는 총회, 사회 문제에 대해 복음의 해답을 제대로 제시해 주는 총회, 국가와 사회가 총회의 결정에 관심과 기대를 갖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총회가 되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이제 총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총회를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총회에 참석하시는 총대들이 필자가 받았던 “교단 총회가 뭐하는 곳이에요? 총회에 가시면 주로 뭘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동일하게 받았을 때 선명하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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