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교회자립의 왕도 ①송탄장로교회

‘재정 40% 봉사와 선교 사용’ 원칙 지켜…“삶과 생활로 전도할 때 자립 기쁨”

‘개척필패의 시대’라고 말한다. 전문가들도 ‘맨땅에 헤딩’하듯 개척하면 반드시 교회 문을 닫는다고 말한다. 재정과 성도를 지원받아야만 교회개척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조언한다. 교회가 너무 많은데 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야 하냐는 교회개척 무용론까지 퍼져 있다. 이런 시대와 상황 속에서 교회개척에 나선 목회자들이 있다. 전문가들이 ‘90% 이상 실패한다’고 경고한 ‘맨땅에 헤딩’을 했다. 선배 목사들에게 그렇게 목회하면 안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자칭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교회개척의 성공방식’과 다른 길을 걸었다. 송탄장로교회(권혁철 목사) 시냇가교회(권영만 목사) 더불어숲교회(이도영 목사) 함평전원교회(서종석 목사) 세움교회(정성수 목사) 배넘실교회(이춘식 목사) 산소망교회(김철수 목사) 함께하는교회(진교소 목사) 행복한교회(한성희 목사), 총회 교회자립개발원이 주최한 교회자립수기 공모에서 수상한 교회들이다. 모두 개척한 지역과 시기와 처한 상황이 달랐지만, 교회 자립을 일구었다. 자립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서 좋은 교회로 인정받았다. 이 교회들은 어떻게 자립했을까? 다른 이들이 모르는 자립의 첩경이 있는 것일까? 4회에 걸쳐 ‘교회자립의 왕도’란 제목으로, 자립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교회자립의 왕도’를 위해 첫 번째로 송탄장로교회 권혁철 목사와 이대인 사모를 만났다. 송탄장로교회는 송탄 시내 외곽인 평택시 장당동 47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한양아파트 내 상가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권혁철 목사는 군대 제대를 하고 24살에 수원신학교 야간과정에 입학했다. 어려운 형편에 낮에 직장에 다녔다. 10년 동안 부교역자로 사역했고, 33살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부목사로 시무할 때 두 번 담임청빙을 받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모두 무산됐다. 2003년 3월 30일, 6개월 동안 방치된 상가 2층을 보증금 1500만원 월세 30만원에 임대해서 개척했다. 예배당 한쪽에 사택을 만들어 생활했다.

▲ 송탄장로교회 권혁철 목사와 이대인 사모는 ‘자립’의 의미를 ‘재정 안정성’으로 여기지 않았다. 돈이 우상인 세속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목회자가 세상과 다른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전도라고 말했다.

“자립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송탄장로교회는 15년 전 개척한 상가를 매입해서 리모델링하고 계속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척 당시와 변한 것은 예배당 앞의 과수원에 우미이노스빌 아델리움 하이빌 등등 있어 보이는 아파트들이 들어선 것이다. ‘신도시가 세워졌구나. 자립하기 쉬웠겠네’라고 생각하며 교회로 들어섰다.

“아파트가 많네요. 개척하고 얼마 후에 자립하셨나요?”

“저 신도시 아파트는 이쪽과 다른 세상입니다. 종교부지에 크고 좋은 교회가 있는데. 이쪽은 낙후한 지역이라고 오지도 않았어요.” 권혁철 목사는 말했다. 그리고 “자립요? 자립의 기준이 외부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자립했습니다.”

개척 멤버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권 목사의 가족 포함 5명이 예배를 드렸다. “생계에 대한 대책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 지원을 받으면 거기에 의지할까봐 두려웠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교회 전체 재정의 40%를 지역 봉사와 선교에 사용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개척한 직후부터 농촌 교회에 선교비를 보내고, 해외 선교사를 지원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재정을 사용했다. 목회자 생활비로 17만원이 남았을 때도, 이 원칙을 깨지 않았다.

“기본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지요”

개척을 한 후 권혁철 목사와 이대인 사모는 한양아파트를 돌며 전도를 했다. 주민들에게 욕을 듣고, 소금에 맞고, 경비원에게 쫓겨났다.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사는 아파트여서 야간에 일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낮에 초인종을 눌러대니 오죽했겠습니까.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6개 교회가 그렇게 전도를 하고 있더군요.”

당장 아파트 전도를 그만두었다. 권 목사 부부가 가진 1200여 권의 책을 이용해 마을도서관을 개관했다. 도서관은 이대인 사모가 맡았다. 권 목사는 병원 전도를 시작했다. 매주 200킬로그램이 넘는 책장을 끌고 다니며, 환자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함께 기도했다. 4년 동안 빼놓지 않았다. 그의 성실함을 병원 직원과 환자들 모두 인정했고 그를 반겼다. “전도 열매요? 딱 한분이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때는 그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변했습니다.”

권혁철 목사는 부교역자 시절 성도를 ‘영혼’으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개척 한 후에 ‘한 영혼’에 대한 절실함과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 마음을 요양원 전도를 하며 지금도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51명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목회자라도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를 덜덜 떱니다. 죽기 직전에야 복음을 들었지만 고요하게 숨을 거두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요양원과 병원 사역을 하면서 삶과 목회의 본질을 늘 깨우고 있습니다.”   

“삶과 생활로 전도해야 진짜입니다”

권혁철 목사가 교회와 목회의 본질에 중심을 잡고 있다면, 지역을 위한 사역은 이대인 사모의 역할이 컸다. 이 사모는 권 목사의 목회철학에 동의하고 적극 지지했다. 개척 초기 문화시설이 전무한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피아노 무료 교육을 했고, 토요성경학교를 열었다.

장당마을도서관을 개관한 후, 이대인 사모는 관련 서적을 읽고 공부를 하며 전문성을 키웠다. 초등학생과 엄마들을 위한 독서모임을 만들고, 독서모임의 아이들과 ‘마을문학의밤’도 개최했다. 무엇보다 마을도서관을 지역 주민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서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입시경쟁에만 내몰리는 청소년을 위해 2011년부터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를 진행하며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당연히 처음에 주민들이 도서관을 찾지 않았지요. 하지만 성실하게 매일 개관하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교회 나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사람들은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합니다. 그때를 위해 평소 삶과 생활로 복음을 전해야지요.”

송탄장로교회 권혁철 목사와 이대인 사모를 만난 후,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는 명언이 떠올랐다. ‘목회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믿고 실천하는 것을 무모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은가. 또한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핑계로 목회의 성실함과 치열함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복음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소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 송탄장로교회가 자립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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