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영 목사(전주 중인교회)

▲ 조무영 목사(전주 중인교회)

교회 안에서 가르침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짐은 가르침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골 1:28).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말씀하셨고(마 7:15), 사도 베드로나 유다는 ‘이미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고, 너희 중에서도 거짓선생들이 있으리라’고 경고한 바 있다(벧후2:1, 유 1:4).

이들을 향하여 유다서에서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라고 말씀한다(유 1:12). 여기서 ‘애찬(아가페)’이란 문자적으로는 ‘사랑’인데,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구속의 사건을 기념하여 ‘아가페’ 곧 ‘사랑’이라 부르며 애찬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니까 애찬은 그리스도처럼 살기로 결단하고, 그 사랑을 지켜나가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유다서에서는 거짓교사들을 이런 애찬 안에 감추어진 암초 같은 존재라고 한다. 암초(스필라스)는 물 아래에 있기에 분별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위험거리가 된다.

사실 교회 안에 이런 암초들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들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다만 ‘이들을 어떻게 분별한 것인가’ 그리고 ‘이들로부터 어떻게 교회와 자신을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가 풀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거짓교사들의 첫 번째 특징은 가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가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거짓교사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없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소견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신념대로 가인의 길을 계속 가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다.

거짓교사들의 두 번째 특징은 발람처럼 삯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발람은 선지자였지만 바른 길을 떠나(벧후 2:15) 삯을 사랑하고,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갔다. 거짓교사들은 발락과 같은 자들이 미혹할 때, 발람의 길을 간다. 발람과 같이 돈에 매이고, 굴복하여서 주님의 부르심과 사명을 외면한다. 삯을 위해서라면 법당에서도 설교를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든 말든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든 살든 관심도 없다. 다만 물질을 좇아 발람의 길을 계속 가는 물질주의자들이다.

거짓교사들의 세 번째 특징은 고라에게서 찾을 수 있다. 고라는 명예욕이 강한 패역한 자다. 거짓교사들은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하나님을 거스르고, 영적인 질서를 깨뜨리고 무너뜨리는 것을 가볍게 여긴다. 이들은 직분을 하나의 명예와 힘(권력)이라고 생각하고, 서슴없이 과감하게 하나님을 대적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거짓교사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강조하지만 실천은 없고, 예배를 드리지만 경건을 상실하고, 결국은 그리스도도 없는 예배에 감격스러워 한다. 물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면 직분도 망각하고, 교회도 교인도 팔아먹을 기세이다. 아니 하나님의 이름마저도 이익의 재료로 삼는다. 발람이 나귀에게 가로막힌 것처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영적인 권위와 질서는 무너진 지 오래다. 마치 사사기 시대처럼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행할 뿐이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와 총회가 애찬의 암초 같은 존재들로부터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권위가 회복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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