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과학이 하우(how)에 대한 대답을 가르치고 있다면 기독교는 와이(why)에 대하여 대답한다. 과학이 하우(how)에 대한 질의 응답 시스템이라면 기독교는 와이(why)에 대한 질의응답 시스템인 것이다. 지금도 과학의 영역에서는 과학에 의해 문제가 제기 되었으나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이를 한계질문(limit question)이라고 한다. 과학이 무엇임을(what is)을 제시해준다면 기독교는 무엇이어야함(what should be)를 제시해 줌으로서 서로 보완해줄 수 있다.

과학과 종교의 상호작용에 대하여 1921년 광전효과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현대과학혁명을 이루었다는 아인슈타인의 고견을 들어보자 “실재의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은 합리적이므로 인간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신념도 역시 종교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심오한 신념이 없는 과학자를 진정한 과학자라고 여길 수 없다. 이 상황은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종교 없는 과학은 온전히 걸을 수 없으며 과학 없는 종교는 온전히 볼 수 없다.”

1954년에 발표한 아인슈타인의 글이다. 아이작 뉴튼은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을 창조한 하나님을 고백하였다. 하지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4차원 시공간연속체를 창조한 하나님을 고백하였다. 앞으로 우리는 만물의 궁극을 끈의 형태로 본다는 ‘초끈이론’에 의해 10차원의 시공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과학과 기독교의 만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과학과 기독교의 바람직한 만남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제한하거나 인간을 기만하는 일을 방지하는 좌표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상생하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핵물리학자이며 기독교 신학자인 이안바버는 과학과 기독교의 만남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그에 의하면 만남의 유형은 갈등 독립 대화 통합으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만남의 유형을 간략하게 나누어 본다면 학교에서 과학교육을 받은 젊은 지성인들의 눈에는 상식으로서의 과학을 부정하는 기독교 이미지와 상식으로서의 과학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이미지가 대별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과학의 업적을 상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과학과의 갈등과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 기독교 세력이 있는 반면, 현대과학의 업적을 상식으로 인정하고 과학과의 대화와 상호 보완을 모색하려는 기독교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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