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가 들려주는 상도동 이야기]

참 궁금하다. 왜 백마상 중간이 끊어져 있을까? 상도동 숭실대학교 중심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백마를 표현한 조각상이 있는데, 한 가운데가 공백으로 되어있다. 이 공백에는 16년간 폐교한 아픔을 표현한 것인 동시에, 또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감사함이 묻어있다.

1897년 평양에서 설립된 숭실학교는 이후 신사 참배를 거부한 일로 일제가 심하게 압박하자 1938년 자진 폐교한 뒤 1954년 서울 영락교회를 통해 재건됐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백마상에 담은 것이다. 아픔이란 16년간 학교의 문을 닫아야 했단 아픔이요, 감사는 교회를 통해 학교가 재출발할 수 있었던데 대한 감사이다.

숭실대학은 배위량(William M. Baird) 선교사에 의해 1897년 10월 10일 평양의 선교사 자택 사랑방에서 설립되었다.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배위량 박사는 1906년 감리교와 연합하여 숭실학교를 한국에서 가장 크고,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고등교육기관인 기독교연합대학으로 성장시켰다.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1908년에 첫 졸업식이 거행되었고 배위량 박사는 당시 그 자리에서 분명한 개교이념을 밝혔다. “학교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은 종교적이고 영적 요소를 개발하여 백성들 가운데 복음을 전파할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였던 1915년 개정된 일제의 사립학교령은 기독교학교가 성경과정과 채플을 정규과정으로 운영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런 역경 속에서도 숭실대학은 많은 민족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조직신학의 기초를 놓은 박형룡 박사, 복음적 성경신학의 초석을 다진 박윤선 박사,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모범이 된 한경직 목사 등이 바로 숭실대학 출신들이다.

1938년 장로교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숭실대학은 신사참배에 가담하기보다는 차라리 학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3월 18일 자진 폐교를 강행한다. 이후 16년이 지난 1954년 4월에서야 서울에서 학교가 재건될 수 있었다.

이제 숭실대의 과제는 성숙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사실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폐교를 감수한 것도 결국은 성숙을 위해 성장을 잠시 멈춘 것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 숭실대 기독교학과에 재학 중인 정세원 학생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여기서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숭실 최고의 자랑은 IT산업도 아니고, 우뚝 솟아오른 건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숭실 최고의 자랑은 선교사들의 순교적 폐교 신앙과 선배들의 폐교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번쩍거리는 건물을 볼 때 보다, 이 백마상을 볼 때 숭실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필자는 어린학생의 글을 보고 은혜를 받았다. 백마상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성숙이 아닌가? 그리고 며칠 전 참 좋은 소식을 들었다. 2018년 5월 10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숭실 재건 감사예배를 드리며 숭실 기독인 비전선언문이 선포되었는데, 이 선언문의 핵심이 “기독교 정신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숭실대의 사명이다” 또한 “평양숭실 대학을 기대하며 다가올 통일시대를 이끄는 선도대학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성장 속에서 성숙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선언문이라 확신한다. 여느 대학에서 볼 수 없는 미션이다.

숭실대학교와 가장 가까이 있는 교회의 목사라는 이유로 매년 숭실대 채플을 인도한다. 채플참가가 졸업에 필요한 의무사항이기에 많은 학생들이 참석한다. 매년 다르게 설교를 준비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동일하다.

지난번에는 채플을 인도하다가 설교시간 마지막에 학생들에게 “목사님이 여러분의 인생과 학교의 선배로서 소원이 하나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라고 동의를 구했다. 예상대로 별 반응이 없었다. 반응이 없다면 암묵적 동의 아닌가?

강대상 앞으로 나와서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그날은 축도대신 간절한 무릎기도를 했다. 어떻게 기도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 그런데 기도가 끝날 때에 학생들이 큰소리로 “아멘”이라고 했다. 아멘은 하나님과 내가 연결될 때 동의를 하는 확신의 소리다. “아멘”이라고 외친 학생들과, 그 “아멘”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마치 백마상의 공백을 잘 채운 것처럼 진정으로 성숙한 숭실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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