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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 뿌리 다섯 교회[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한 뿌리 다섯 교회? 광고문구가 아니다. 한 지역교회가 동일한 지역에서 5개 교회로 분립하여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참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바로 노량진교회와 이 교회에서 분립한 상도교회 송학대교회 봉천제일교회 남현교회의 이야기이다.

한 뿌리는 1906년에 세워진 노량진교회다.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하고 21년 뒤에 세워진 교회니까 한국의 초창기 교회에 속한다고 하겠다. 노량진교회가 세워진 지역은 당시 천민들과 무당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집단촌이었는데, 흑석리 조신애 성도의 3칸짜리 집에서 헐버트(H. Hulbert) 선교사를 모시고 최초로 공식예배를 열었다.

시간이 흘러 1947년에 상도동의 기도처에서 모인 성도들 30여 명이 상도교회를 분립하는데, 분립 이유가 참 소박하다. 지금은 상도동과 한강대교를 이어주는 상도터널이 있어 오가기가 편리하지만, 그 당시에는 주민들이 상도고개를 넘어 노량진교회까지 가야 했는데, 이 길이 험하고 무섭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4년에는 송학대교회가 분립하고, 1955년에는 다시 봉천동에서 나오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봉천제일교회가 분립하고, 1965년에는 상도교회에서 남현교회가 분립되었다.

▲ 노량진교회와 상도교회 등 ‘한 뿌리 다섯 교회’가 함께 찬양예배를 열고 있다.

한 교회에서 분립되었다고 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다섯 교회는 지금도 한 뿌리 다섯 가지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다섯 교회는 1995년부터 찬양대원들의 연합활동을 통해 한국교회 역사의 본보기가 되자는 목적 하에, 찬양대의 자질향상과 교회음악의 정보교환을 위한 교류를 해왔다. 2001년부터는 찬양연합행사를 통해 그 정신을 나누고 있는데, 무엇보다 다섯 교회 중의 한 교회에서 설립 100주년 혹은 50주년 등 축하할 일들이 생기면 전체가 가서 찬양으로 축복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함께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해외에 커다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공동으로 자선음악회를 개최한다. 미혼 성도들을 위한 결혼상담사역이며, 캠퍼스선교사역을 협력해서 추진하고, 교역자들끼리 연합 체육대회를 열기도 한다.

한 뿌리 다섯 교회! 참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그래도 정말 부럽다. 하지만 부러운 것에서 마침표를 찍으면 정말 지는 것이다.

필자의 처음 글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교회는 지역교회일 수밖에 없다. 지역을 떠나서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 뿌리 다섯 교회만을 보고 부러워한다면 정말 지는 것이고, 또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우리에게 ‘그림의 떡’이 되지 않으려면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한 뿌리 다섯 교회도 처음부터 연합세미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연합찬양제를 열지도 않았으리라. 누군가가 용기 내어 기획했을 것이고, 횃불을 들었을 것이다.

창세기 41장의 요셉이 생각난다. 그는 7년간의 풍년동안 다가올 흉년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창고를 열기위해 준비한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요셉은 창고를 열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모을 때는 사람들이 아무도 집중하지 않았는데, 창고를 열자 애굽 백성들뿐 아니라 각국 백성들이 요셉을 집중했고 그에게로 몰려왔다.

지역마다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112년 전에는 누군가가 노량진교회를 시작했고, 지금부터 23년 전에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한 뿌리 다섯 교회 찬양제를 시작했다. 이제는 또 어디에서 누군가가 그와 같은 일들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세상이 교회를 다시금 집중하게 될 것이고 교회로 몰려오지 않겠는가?

▲ 조성민 목사(상도제일교회)

우리나라의 복음화율이 가장 높을 때가 언제였을까. 놀랍게도 풍족할 때가 아니라 살림이 어려워 온 국민이 보릿고개를 지낼 때였다. 지금이 바로 우리 사회에 영적인 보릿고개의 시절이 아닌가? 정말 어려울 때다. 어려울 때 창고를 열어야 한다. 요셉은 큰 교회가 아니다. 요셉은 여는 교회다. 여는 사람이 요셉이 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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