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예수 그리스도는 3년의 공생애를 대부분 대화로 보내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변되는데, 가르치고 먹이시고 치유하시는 것이었다. 주님은 어떤 일을 시도하실 때 대화로 시작하셨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최초의 이방여자 선교사를 만드는 일화를 남기셨고 엠마오 도상에서 만난 제자들과의 대화 역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확실한 교육의 장이 되게 하셨다. 부활 이후 디베랴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간 제자 베드로를 다시 소명하실 때도 대화로서 다가가셨다.

대화는 모든 나눔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대화 없이 나누는 물질은 효과적으로 나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의와 사랑이 결여된 일방적 전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 기독교가 구제와 자선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면서도 성과가 없는 것은 대화 없이 사진 한 장 찍는 식의 일반적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나눔이 물건의 전달로 진행되는 일방적 구제는 기독교적 나눔이 아니다. 나눔의 역할에서 중요한 것은 평등한 관계에서의 나눔이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일방적 전달은 더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베푸는 값싼 동정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누는 물질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나눌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여기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과 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비전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참된 대화 속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모두 공존한다. 대화란 서로를 긍정하기도 하지만 부정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대화란 나와 타자 그리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촉진한다.

기독자와의 대화는 항상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과 교육의 본질은 대화이다. 마틴 부버는 인간에 대하여 태어날 때부터 대화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했다. 부버의 사상은 둘로 나누어지는데 인격적 인간과 비인격적인 것이다. 인격적인 것은 나와 너의 관계이고 직접적 관계이다. 우리는 인격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끊임없이 사고와 행위의 인격 행위 속에서 대화를 요청받는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인격적으로는 남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이웃과는 나와 너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화는 사람과 사람의 교제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기억하고 참된 기독교적 나눔이 대화로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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