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찬 교수(전 세종대, 경영학 박사)

▲ 황호찬 교수(전 세종대·경영학 박사)

최근 몇 년간 ‘사랑의교회’(서울 서초동 소재)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도 일반 사회 조직이나 국가처럼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다 보니 약간의 의견 차이는 극히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마태복음 18장 17절)에 따라 교회 문제는 일차적으로 교회 안에서 해결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수의 교인은 이 문제를 교회 밖으로 이슈화했고, 이제는 ‘사랑의교회’라는 개 교회 문제를 떠나 한국교회 전체 및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이번 사태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교회 안에 잠재해있던 갈등요인이 각종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교회관련 사법 판례를 양산하게 되었고, 결국은 국가가 교회의 고유영역까지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와 교회의 독립성

왜 종교의 자유가 중요한가? 한 마디로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종교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신론자도 ‘신이 없음’을 믿기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종교적이다. 만일 인간의 ‘무엇인가 믿어야 하는 근본적인 욕구’가 억압받으면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하던지 아니면 죽기까지 저항한다. 이와는 반대로 특정종교가 국가의 모든 면을 지배하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많아 이 역시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종교와 국가의 균형을 담보하기 위해 헌법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정치적으로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철저히 견지한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의 한 영역이 종교라는 다른 고유영역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화란의 기독교 법철학자 도이벨트는 사회의 여러 기능 혹은 제도는 각자의 고유영역(물리, 미학, 신앙, 법 등)이 있으며 각 영역은 그들만의 법칙이 있으므로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예를 들어 물리학의 양자이론의 정당성을 법이 규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도이벨트의 주장은 종교와 국가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공동체이다. 이 신앙의 공동체는 다른 사회관습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교회 고유의 핵심가치와 조직에 의해서 유지된다. 예를 들어, 교회의 근간인 성경, 성경을 해석하는 성직자, 성직자를 임명하는 절차, 성도의 자격과 교제 등은 교회가 원리를 정하고 교회가 운영하며 교회가 책임진다. 따라서 어느 것 하나라도 질서가 파괴되면 공동체 존립자체가 위험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자율적 장치는 그 자체로 이미 독립적이며 전문적이다. 국가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가능하면 교회 문제는 교회가 자체적으로 판단하도록 위임하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교회와 사회법

최근 ‘사랑의교회’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는 개교회 차원을 넘어서 교회의 독립성, 종교의 자유, 한국교회의 위상, 교인의 권리 등 근본적인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국가기관마다 법 해석을 달리하여 교회가 피해를 입은 경우.

‘사랑의교회’는 2012년 교회를 새롭게 건축함에 있어 교회 뒤편에 위치한 ‘참나래 길’의 지하 일부를 교회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서초구청에 요청하였고, 서초구청은 현행법 및 여러 상황을 검토하여 도로의 지하점용을 허가하였다. 이를 위해 사랑의교회는 반포대로 일부 기부, 구립 유치원 공간 기부, 지하철 입구 대지 기부 등과, 지하 대지 점용에 따른 사용료를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특정 교회에 지하점용을 허가한 것이 현행법에 저촉된다고 판결하였고,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에 두고 있다. 이 문제는 국가기관 사이(구청과 법원)에서 발생한 법률적 해석 차이에 기인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기관(구청)의 결정을 존중하고 신뢰하여 건축을 진행한 교회가, 다른 국가기관(법원)으로부터 상이한 판결을 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교회는 재정적 손실은 물론 이미지 훼손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2) 교회관련 사법판례가 애매모호하여 교회가 피해를 입은 경우.

지금까지 교회와 관련된 재산법 판단의 근거는 소위 말하는 ‘총유’개념이다. 총유란 법인이 아닌 사단 등이 집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하는 공동소유의 형태이다(민법 제275조). 이를 교회에 적용하면 그 구성원인 교인은 누구든지 교회의 모든 재산 및 장부의 열람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매 주일 출석 인원이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랑의교회’임에도 불구하고, 20명이 채 안 되는 일부 교인들의 장부열람 요구를 법원은 받아드렸다. 즉 몇 사람의 장부 열람권한이 수만 명 성도들의 열람불가 권한보다 중요하다고 판시한 것이다. 장부열람 결과 오히려 교회의 재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와 같은 법원의 결정은 교회 사역에 큰 지장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교회와 관련된 애매모호한 법률이 좀 더 구체화(열람요건의 명시 등)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3) 성직자의 자격을 사회법이 판단하여 교회가 피해를 입은 경우

교회는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에 명시된 권리에 근거하여, 자율적으로 제정된 자체 교회법에 따라, 성직자의 자격을 검토하고 임명하고 면직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이에 따라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위임소송 1심과 2심에서는 담임목사의 임명에 특별한 하자가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1심 및 2심과 달리 법리를 다시 해석하라고 고등 법원에 요구하였다.

근본적인 차이점은 1심과 2심은 ‘편목제도’에 따라 위임된 담임목사의 자격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음에 비해, 대법원은 ‘편목제도’ 대신 ‘일반편입’ 제도가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두 제도의 차이는 너무 분명하다. ‘편목제도’는 이미 목사인 자에게 교단 목사 자격을 부여하는 절차이고 ‘일반편입’은 아직 목사가 아닌 자에게 목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이수하도록 요구하는 절차다. 사랑의교회가 소속된 동서울노회는 15년 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는 ‘편목제도’의 모든 요구조건을 충족하였으므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미 미국에서 16년, 한국에서 15년, 총 31년간 성직자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목사에게, 교회가 아닌 사회법정의 이러한 판결은 한국교회 전체는 물론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는 사랑의교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편목제도로 목사 지위를 획득한 자의 자격과 더불어, 향후 이 제도의 존속여부 재검토 등 한국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위에 예로 제시한 일련의 사건들은 ‘교회란 무엇인가’와 ‘교회의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 즉 교인들의 권리와 의사는 과연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가? 국가기관 간의 의견차이로인해 교회가 입은 피해에 대해 국가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현존 법원 판례의 모호함으로 인해 교회가 입은 피해에 대해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교회 성직자의 자격 및 임면이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법정에서 결정된다면, 교회의 순결성과 하나님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인가?

이 모든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당사자인 사랑의교회 교인들이다. 사랑의교회가 지금 처한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여 장래에도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특히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랑의교회 공동체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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