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교회음악과 교수>

“오늘 찬양 참 은혜로웠어요.”

“오늘 찬양에 은혜 받았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에 가끔씩 성도들로부터 듣게 되는 칭찬(?)의 말이다. 찬양이 은혜로웠고, 찬양에 은혜 받았다니 어쨌든 감사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찬양을 은혜롭게 만든 것도 아니고 은혜를 베푼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내가 들어도 되나?’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찬사를 내가 받은 것 같아 그저 겸연쩍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과연 ‘찬양을 통해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하는 물음이다.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은혜의 방편,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세례와 성찬)로 본다. 찬양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찬양에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신학적으로 보면 잘못된 표현인가?

우선 신앙적인 어떤 내용을 빼고 ‘음악 자체’만을 생각해 보면, 음악이 은혜의 수단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음악 자체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력도 갖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음악은 인간에게 분명히 어떤 영향을 준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도 그런 음악의 영향력을 인식하여 음악이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까봐 매우 경계하였다. 그렇다면, 음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일까?

일반적으로 음악을 ‘감정의 언어’라고 말한다. 그처럼 음악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감정적인 부분이다. 음악의 그러한 감정적인 영향을 우리는 ‘감동’이라고 부른다. 음악은 그렇게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같은 연주회장에서 열린 연주회에 참석한 어떤 이가 음악에 영향을 받았을 때 일반적으로 ‘감동적이었다’고 말하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예배 중에 드려진 ‘찬양’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 찬양이 마음에 와 닿았을 때, 어떤 이는 ‘감동적이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은혜로웠다’, ‘찬양에 은혜를 받았다’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표현이 틀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찬양 곡의 경우, 사람들에게 ‘은혜’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 음악에 담긴 신앙적인 내용이다. 찬양 곡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어떤 성경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떤 찬양 곡은 아예 그 가사가 성경 말씀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찬양 곡의 성경적인 메시지 또는 성경적인 가사가 듣는 이에게 은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는 것은 찬양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찬양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자의 신앙적인 반응과 고백도 담겨 있는데 그것이 또한 우리에게 은혜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음악적인 요소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것들은 그 찬양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강화시켜서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말보다 음악으로 선포되는 메시지가 대체로 더 힘이 있는 것이다.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수단이다. 이러한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분이 주시는 은혜를 늘 경험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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