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GMS 2018 총회세계선교대회미리보는 세계선교대회 ②

본 글은 2018 총회세계선교대회에서 조나단 봉크 박사가 강연할 ‘선교와 섬김’에 대한 글을 요약한 내용이다.
조나단 봉크 박사(Dr. Jonathan J. Bonk)는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나 에티오피아에서 성장해 아내와 함께 그곳을 섬겼고, 애버딘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여러 교육기관에서 섬겼다. 현재는 OMSC(Overseas Ministries Study Center)의 명예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봉크 박사는 <선교와 재정:서구 선교사들의 문제가 된 풍요>(1991년 초판, 2007년 재판)라는 저술로 유명하다.

선교와 섬김에서 예수께로부터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서의 가로막힘과 실패이다.

최근에 인구실태 문제가 한국이란 나라뿐 아니라 한국 선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사무엘 에스코바, 르네 빠디야 같은 남미 선교학자들이 ‘경영관리식 선교’(managerial missions)라고 칭한 한국적 선교 사업을 발견하고 있지만, 경영관리는 선교의 기반이 아니다. 인구실태조사나 경영관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하는 선례다.

요셉, 모세, 다윗, 선지자들은 저마다 약점도 있고 고난도 겪었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을 고수했다. 예수는 성부에 의해 이 세상을 구하라고 위임받아 파송되었다. 예수는 어떻게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의 선교를 수행했는가? 예수가 실현되기를 원했던 우선순위들은 무엇이었는가? 예수의 ‘타겟’ 그룹은 누구였는가? 누가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왜 그랬는가? 누가 거부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사역의 단기적, 장기적 결과는 무엇들인가? 예수와 성부께서는 성공을 어떻게 측정했는가?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은 성공을 어떻게 측정했는가? 우리가 그의 가르침과 사역 패턴에서 탈선한 것은 아닌가?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만일 예수가 한국 선교사나 목사였다면 실패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예수는 GMS선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을까? 예수는 GMS지역대표나 선교총무가 될 수 있었을까?

결론을 맺는다. 하나님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독자들이 시간적으로, 문화적으로, 또는 환경 안에 한정되어 있다 할지라도 신뢰할 만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자 교범이다. 말씀은 우리 양심을 향한 정확한 안내서이다. 양심은 해시계와 같아서 햇빛(sun light)이 있을 동안에는 시간을 제대로 알려주지만, 어둠 속에 있으면 우리가 우리 원하는 대로 비추는 전등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것만 알려준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시점에 사회 과학을 바탕으로 한, 수상쩍고 인위적인 경영관리식 선교학적 이론 대신에 명료한 성자의 빛(the clear Son light)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들을 판단하도록 우리 자신을 재헌신하는 것이 적절하다.

선교와 섬김에서 바울에게 배우는 것은 ‘나 먼저’라는 세상에서 앞과 뒤에 서는 것이다. 예수는 많은 지역을 여행하지 않았지만 바울은 잘 알려진 곳을 두루 다녔다.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낙인 찍혔다. 미혼모 슬하, 갈릴리 사람, 미심쩍은 유대 혈통에 공식적인 교육은 부족했지만 최악의, 최고로 수상쩍은 추종자들에게는 매력 있는 재주꾼, 도저히 자신을 메시야일 수 없다는 평판을 받게 만든 세리, 매춘부 친구들이 있었다.

반면에 바울은 엘리트였고, 공식적으로 종교적이고 지적인 훈련을 받았고, 당대 가장 유명한 교사에게 배웠고, 폭넓게 독서했고 로마 시민권을 지닌 특권층 유대인이었다. 바울은 다작 작가였고, 위험에 직면해서도 겁내지 않는 독립적인 사색가였다. 하나님은 우리 선교사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들처럼 끄트머리에 두셨다. 바울 시대에 원형 경기장 행사의 마지막 순서(끄트머리)에 강제로 내몰린 검투사들이 벌거벗은 상태로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상대방과 겨뤄야만 하는 광경이다.

선교사들과 다른 영적 멘토들과 리더들에게 무엇이 두드러져야 할 것인가? 강함이 아니라 약함, 빈틈없는 무결성이 아니라 취약성, 명예가 아니라 불명예, 건강한 육체나 멋진 가운이나 안락한 가정이 아니라 빈곤하고 누더기를 걸치고 집 없이 지내는 삶, 권세 있는 자들의 겉치레 인사가 아니라 저주와 비방과 처형, 멋진 은퇴 연금 계획이 아니라 궁핍함. 간단히 말하자면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이 땅의 찌꺼기, 이 세상의 폐물(the scum of the earth, the refuse of the world)’(NIV, 고전 4:13)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했다(고전 4:16). 법정에서 매 맞고 수감되는 불편을 겪는 삶을 본받으라기보다 복음을 나누는 열정과 충정을 본받으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주 초기부터 바울이 선교사가 되는 일에 치를 일들로부터 바울을 숨기지 않으셨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사랑했고 그 성도들은 바울의 고난을 공유했으며 바울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

우리 삶이 바울의 삶과 같을 수는 없을지라도 가장 깊은 수준에서 자신을 예수께 헌신한 자들은 누구나 바울과 바울의 주이신 예수를 본받아야 한다. 결론을 맺는다. 아이들이 어른인 채 흉내내면 웃기지만 조그만 아이들도 큰 아이로 성장해 결국 어른이 된다. 문화적으로나 영적으로 꾸준히 모델들을 본받는 그들의 습관과 우선순위들이 비록 작은 분량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도 예수와 바울의 ①성육신 ②취약함으로 섬김 ③강함으로서의 약함을 꾸준히 본받아야 한다. 바울이 언급한 “나를 본받으라”는 의미를 부여잡고 씨름하자.

▲ 문상무 목사
·괴정중앙교회
·총회세계선교대회 부대회장
133년 전인 1885년 4월 5일에 어둠의 땅인 조선에 복음을 들고 와서 이 땅에 빛을 밝혔던 서구 선교사들의 섬김와 희생,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는 제3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교회의 성장을 이루었고, 세계선교를 주도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리 교단은 1907년 9월 독노회를 조직하면서 해외선교부를 두어, 그 해에 안수 받은 첫 일곱 목사 중 한 분인 이기풍 선교사를 제주도에 파송하였다. 1908년에는 일본으로 한석진 선교사를, 1909년에는 시베리아로 최관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그리고 1912년 9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조직하면서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 다음 해에 총회선교부는 박태로, 김영훈, 사병순 등 세 분의 목사를 중국 산동성 래양현에 파송을 하였다.

이렇게 시작부터 세계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우리 교단이 선교에 전념함으로 110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 세계 98개국에 2550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케 되었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선교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총회는 1998년에 교단선교전문기관인 총회세계선교회(GMS)를 출범시키고 세계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한국교회의 성장이 정체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선교에 대한 인식도 꺼져가는 등불처럼 점차적으로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금번에 실시하는 2018년 총회세계선교대회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번 대회는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이 함께 꺼져가는 조국교회에 다시금 선교의 새 바람을 일으켜서 침체된 선교 사명을 다시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선교적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스스로 섬기는 자가 되셨고,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말씀하셨다. 초대교회는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 필요한 물질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 등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삶을 실천함으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았고, 그에 대한 결과로 복음이 왕성하게 전파되었다(행 2:44∼47).

섬김은 선교의 본질이고, 교회의 본질이다. 독일 디아코니아 150주년 백서에 ‘복음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왔다면 이제는 손끝과 발끝에서’라고 하였다. 복음의 능력은 섬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이 서로 섬김의 모습을 보이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정해진 선교대회만을 위한 준비만 하지 말고 사전에 각 지역에서부터 작은 선교 대회를 개최하여 선교사들의 생생한 선교현장의 이야기와 섬김을 통해서 지역교회가 선교적인 열정을 다시 가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의 섬김으로 영적인 재충전을 통한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교회와 선교사들의 섬김으로 다음 세대들이 그리스도의 섬김의 도를 배워서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인재들을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번 선교대회가 이런 예수님의 섬김을 실천하여 선교사들과 교회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세계 선교의 열정과 부흥을 다시 경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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