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리 선교사 부부, 사진과 글로 남긴 기록물과 양림동산 사택 역사적 가치 재조명

▲ 빛고을 광주의 은인 허철선 선교사 가족이 머물러 지내던 양림동산의 사택.

광주 기독교선교의 발원지인 양림동산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가나 다름없던 서양식 고택 한 채가 있었다. 광주기독병원 원목을 지낸 찰스 B. 헌트리(한국명 허철선) 선교사가 거주하던 사택의 모습이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수많은 이들이 드나들고 활발한 복음사역과 문화사역이 전개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현재 이 가옥에 머물고 있는 단체들은 ‘The 1904’(대표:홍인화 권사) 교회개척연구원(원장:홍장희 목사) 허철선아트스페이스(대표:양경모 작가) 등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예배와 선교 및 문화사역을 펼치는 동시에 대안학교인 ‘산아래학교’, 광주의 선교유산들을 전수하는 ‘1904 아카데미’, 그리고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허철선 선교사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허철선 선교사는 미국남장로교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아내인 마사 헌트리(한국명 허마르다) 선교사와 함께 1965년 9월 한국에 들어왔다. 남편인 허철선은 광주기독병원 원목과 호남신학대 상담학 교수로 봉직하며 사역했고, 기자 출신인 허마르다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어성경학교를 운영하면서 코리이타임즈 등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평범한 복음사역자들이었던 이들의 인생을 바꾼 사건은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겨온 도시에서 신군부가 자행한 시민학살의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광주기독병원에 실려 온 환자들을 위해 헌혈을 호소하러 나갔던 여고생들이 총격을 받고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모습을 목격하고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결심을 했다.

그들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오월 광주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의 사택은 당시 어떤 언론도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던 광주의 실상을 문서로 담는 편집실로, 참혹한 현장의 사진들을 인화하는 암실로 사용됐다. 그리고 이 부부를 통해 광주의 진실을 담은 결정적 증거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헌트리 가옥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시민들의 피난처 역할도 했다. 많을 때는 22명이나 되는 인원이 이 집에 숨어 지내며 신군부의 삼엄한 눈총을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인 독일인 기자가 광주에서 머문 곳도 바로 여기였다.

하지만 무심히도 흘러버린 세월 속에서 조용히 묻혀있던 헌트리 부부의 행적과 역사적 현장이 되었던 이들의 가옥은 지난해 6월 26일 허철선 선교사가 소천하면서 다시 조명을 받는다. 광주시민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크게 기여한 인물들에게 수여하는 ‘오월어머니상’을 허철선 선교사에게 증정했고, 7월 9일에는 광주 수피아여고 커티스메모리홀에서 추모예배가 열렸다.

이들을 추억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부의 숨은 스토리들이 새롭게 부각됐다. 자연스럽게 선교사의 애제자들이었던 홍인화 권사와 홍장희 목사를 중심으로 허철선 선교사 추모사업들도 잇달아 펼쳐지게 됐다.

특히 올해 5월에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유언을 받들어, 허마르다 선교사가 남편의 유해를 들고 광주를 찾아올 예정이다. 지역교회와 단체들은 이를 기념해 강연회와 문화제 등 다양한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고, 양림동산 꼭대기의 묘원에는 23번째 선교사 묘지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유머가 넘치면서도 사람들을 감복시키는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는 광주의 은인 헌트리 부부를 오랜만에 다시 마주할 생각에 벌써부터 양림동은 들썩인다. 진실의 힘을 간직한 암실이 여전히 보존된 헌트리 가옥도 오랜만에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며 한껏 설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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