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 상도동의 어제와 오늘. 현재의 상도동.

경북 달성군에서 태어나서 10년 이상 살았고. 대전 서구에서 10년 이상 그리고 이제 서울 상도동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상도동은 원하던지 원치 않던지 내게 제3의 고향이 되었다.

▲ 조성민 목사(상도제일교회)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다 상도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얼마 안 돼 장로님 중의 한분이 상도동을 빗대어 “목사님! 여기는 서울 속의 시골입니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무슨 의미인지 의아했는데 상도동에서 10년 이상을 살며 사역해보니까 비로소 그 뜻이 이해가 되었다.

‘상도동’이라는 지명에서 ‘상(上)’은 윗부분을, ‘도(道)’는 길을 의미한다. ‘위쪽에 있는 길?’ 이렇게만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본디 상도동의 이름은 누군가의 죽음을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배웅하던 상여꾼들이 이 동네에 집단으로 거주하여 ‘상투굴’이라고 칭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 상여꾼들은 보통사람들과 어울려 거주할 수 없었기에 높은 산 쪽에 모여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상투굴이 현재의 상도동이 되기까지 숱한 변화가 있었다.

교회에 부임하고서 먼저 외부환경을 진단했다. 우리교회가 속해 있는 상도동이 도대체 어떤 곳일지 알아보고 싶었다. 외부환경 진단은 직접 뛰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상도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음을 알리는 신고식을 아내와 함께 했다.

내 쪽에서는 부임인사를 마음을 다해한다고 하는데, 받는 쪽에서는 너무 형식적으로 대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어떤 상점에는 주인이 나와 보지도 않았다. 선물을 놓고 돌아 나오는데 참 씁쓸했다. 기독교와 우리교회에 대해 좋지 않은 마음들이 있는 걸까? 그래도 젊은 목사 내외가 인사를 하러 찾아왔으면 받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일을 계속할까, 말까? 만감이 교차했다.

▲ 1950년대 상도동의 풍경.

위임식 전 상도동 지역주민들과 상점들을 방문해서 상도제일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는지를 물었다. 간곡한 물음에 솔직히 대답해 주었다. ‘지역사회를 위해 주차장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중앙양행 박영재 대표)’ ‘동네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교회에서 지역상점을 이용해 달라.(축산사랑 문장영 사장)’ ‘일요일이면 차량문제로 혼잡스러운데 마을이 평안할 수 있도록 해 달라.(숭실탁구클럽 박기봉 사장)’ ‘소외된 사람을 보살펴 달라.(GS25 이혜선 사장)’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칭찬받는 교회되어 달라.(한양특수열쇠 유영일 사장)’

정말 깜짝 놀랐다. 지역주민들의 소리를 듣자고 간 것인데 그분들의 소리가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다. 상도동 주민들의 소리를 모아서 지역사회를 향한 상도제일교회 성도의 다짐을 만들고 주보에다 실었다. ‘첫째, 상도동의 상권이 회복되도록 지역상점을 이용하겠습니다. 둘째, 상도제일교회가 있다는 것이 지역주민의 기쁨이 되겠습니다. 셋째, 교회 모임시간 이외에 주차장을 개방하여 지역주민의 자랑이 되겠습니다.’

▲ 1960년대 상도제일교회의 모습.

지금도 이 다짐은 유효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교회 안의 소금’으로 끝나면 성경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교회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소금으로 뿌려질 때 교회도 썩지 않고 지역사회도 썩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성도들뿐만이 아니라 내가 목회하는 지역도 맡겼다는 사실을 직시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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