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섭 목사(순천 대대교회)

▲ 공학섭 목사(순천 대대교회)

교단 산하 노회마다 제102회 총회가 결의한 헌법 개정안을 수의하고 있다. 그 중 유아세례에 관한 헌법적 규칙 제6조 2항도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필자의 견해로는 개정이 불가하며, 종전대로 시행함이 타당하다는 뜻을 표명하는 바이다.

첫째, 유아세례 헌법적 규칙을 개정하는데 신학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유아세례의 문제는 찬반으로 물을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신학적인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 단순히 행정적인 사안을 개정하는 것이라면 시대마다 유연성을 가지고 바꿀 수 있겠지만, 유아세례 문제는 그럴 성질이 아니다. 적어도 유아세례에 관한 헌법적 규칙을 개정하려면 모든 교회가 공감할 수 있는 신학적인 설명을 충분히 해야 한다.

둘째, 지금의 유아세례는 역사적인 개혁교회의 신앙 유산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루터, 칼빈, 쯔빙글리는 성찬을 두고 서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였지만 세례만큼은 일치된 견해를 가졌다. 종교개혁자들은 유아세례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을 뿐 어린이세례에 대해 일체의 언급이 없다.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이나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역시도 자의식을 갖지 못한 유아들에게만 세례를 주도록 언급하고 있다.

교단 헌법을 만들 때에는 성경과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과 교회가 확정한 신앙고백서를 근거로 한다. 교회의 역사적인 신앙고백서를 능가할만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아세례의 연령을 6세로 높이고 7~13세까지 어린이세례를 베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요즘 아이들의 조숙한 사고력을 바탕으로 성인세례라고 지칭하는 세례 연령을 하향 조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셋째, 목회적 관점에서 유아세례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2세 이하의 유아에게만 세례를 줌으로 3~13세까지 어린이들의 공백기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헌법적 규칙 개정의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상황에는 출산 후 예수님을 믿는 부모들도 있고, 부모들은 불신자인데 자녀들만 교회에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불신앙적인 가정에서 출생한 어린이들에게까지 세례를 주자는 주장은 약간의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세례는 목회적인 관점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유아세례는 언약백성들에게 언약의 표시로 주는 행위이다.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언약의 백성이기에 그에게서 태어난 자녀도 언약에 속한 자로 여겨 유아세례를 주는 것이다. 유아세례는 언약적인 관점에서 베푸는 것이지 현실적인 목회적 필요에 의해 행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의 편의성을 따라 헌법을 개정하면 교회는 성경적 진리를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3~13세까지 세례를 주지 않는다고 신앙의 공백기라고 할 수 없다. 지금 불신앙적인 부모 아래서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를 입은 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검증되지 않은 어설픈 어린이세례로 메우려는 시도는 지혜롭지 못하다.

넷째, 부모의 부재시 당회의 허락으로 가능하다는 내용도 가납하기 어렵다.

설령 어린이 세례가 합법적인 것이라 해도 부모의 부재를 당회가 대신할 수 없다. 자녀의 신앙지도는 부모의 책임사항이다. 당회원들이 부모처럼 세례 받은 이후 지속적인 돌봄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상 어린이세례가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이유를 적어보았다. 상당수 노회의 수의절차가 마친 상황이기는 하지만 다시 한 번 교단 전체의 신중한 검토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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