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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거룩한 이야기이종찬 목사(주필)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친숙한 용어가 ‘거룩’이다. 거룩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신앙적 의미의 말이다. 거룩한 성도들, 즉 거룩한 무리가 된 하나님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한 마디로 거룩은 예배자의 선행조건이다.

구약의 원시족장 중 가인과 아벨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믿음 없이 예배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가인은 제물 이전에 예배자가 될 수 없는 삶을 산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은 아마도 아벨이 예배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화 속에 있는 문명의 수혜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는 누구나 그 시대의 아들과 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예외여야만 한다.

오늘날 이 시대만큼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이혼율이 높은 이유를 든다면 인터넷의 영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대가 이렇게 음란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렸을까!

성도는 거룩으로 그 구별됨을 드러내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기독교인은 동네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려지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직장에서 자신이 기독자임을 정중하게 나타낸다. 그리고 그의 품위를 지켜나간다.

중국 고서 <장자>에 보면 원추라는 새 이야기가 나온다.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해서 북해를 오가면서 나무도 늘 가려가면서 앉는다. 원추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절대로 먹지 않는다. 또한 감로천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한낱 조류인 새도 하룻밤 쉬어가는 나뭇가지를 가려서 앉고 먹는 것 마시는 것도 가려서 먹고 마신다는 데서 오늘 기독교인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이 시대는 기독교인들이 발걸음을 금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거룩 곧, 성결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덕목임에 틀림없다. 우리 모두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를 부정하면서 이 시대 신앙의 지킴이들로 살아가자. 가서는 안 될 자리, 앉아서는 안 될 자리에 너무도 쉽게 가고 앉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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