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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하고 싶은 말하다 갈 것인가, 하고 싶은 일하다가 갈 것인가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말처럼 힘 없는 것이 없고, 말처럼 재앙이 많은 것도 없다.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날아가기도 하고, 말을 참지 못해서 더 큰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언론의 자유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바르고 공정한 말을 할 자유이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자율이다.

요즘은 “그 사람 말 참 잘 해” 라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욕이 돼 버린 시대다. 그만큼 말이 난무하고, 말하기 쉽고, 그 말에 대한 이룸과 실천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가리고 익명이란 숲에 숨어서 쏟아내는 허무. 삶이란 터널의 끝에 도달했을 때 밝은 빛을 보며 대지를 박차고 뛰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힘이 있는 것이지, 밝은 빛 봄을 두려워하여 더 깊은 곳에 숨어 날리는 그늘진 웃음은 아플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번복되고 지키지 못할 인생의 말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그 말이 행위로 이어지고 그것이 반복될 때, 그 행위의 반복 속에 포함된 진실의 의미를 믿을 뿐이다.

집무실 의자에 앉으면, 벽에 써놓아서 저절로 보이는 문구가 있다. “부패된 인생을 믿지 말라. 다만 그 순간의 진실을 소중히 여기라.” 지키지 못할 말이지만 그 순간에는 진심이었다 여겨, 그 순간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사랑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이 별 것이겠는가. 다 믿을 수 없고, 다 사랑할만하지 못해도, 그 순간을 진실이라 여겨주고 또 믿어주고 기대하고 그렇게라도 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쁨이요 삶의 길이 아니겠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행위로서 이루지 못하니 더 말이 하고 싶을 것이고, 그래야 속이라도 시원하고 살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삶의 반복은 결국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고립과 고독 끝에 절규하는, 관객 없는 무대 위의 고독해 흐느끼는 피에로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느새 불은 꺼지고 막은 내려지고 관객은 다 흩어져 내 생각과 정서를 나눌 수 있는 그 어떤 지기도 교통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뭔가 말하고 싶을 때, 그냥 묵묵히 그렇게 살자. 큰 언덕, 거대한 장벽은 침묵으로 돌파하는 것이다. 기도하고  해야 할 일하다 보면 기쁨이 나를 감격하게 할 것이고, 살아있음이 감사하게 될 것이다. 삶의 주변이 우리 가슴에 울화를 일으킬 수 있으나, 진실을 체화하는 삶의 행위는 그 울화를 넘는다. 인생의 모든 일은 인간의 뜻대로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큰 둑을 쌓아서 물길을 가두고 돌릴 수는 있어도, 산 정수리에 떨어진 빗물은 결국 바다로 간다.

요즘 자주 생각한다. 나 자신부터 돌아보기 위해서. 과연 진실한가. 그리고 최소한 거짓이 없다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정의로운 사람이, 힘을 확보하며, 동시에 자애로울 수 있을 때, 이 세상은 밝아질 수 있다”라는 사실이다. 너무 많은 경우 말만 번지르할 뿐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를 말하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정의로운 사람은 없다. 정의로운 사람은 그냥 정의롭게 생각하고 정의롭게 살아가고 정의롭게 처리한다.

그러나 또 난감한 것은, 그 생각이 바르고 정의로운 사람들 중에 많은 경우는 말과 생각만 정의롭지 그 정의를 실행할 힘이 없다. 정의를 이루고 싶기는 하지만, 댓가를 치르고 그 정의를 이룰 힘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지는 못하는 유약한 이중성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의를 이룰 힘을 확보함과 동시에 잊지 말 것은 자애로움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평가 판단 비판 폄하하는 바리새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정의, 힘, 자애로움을 함께 확보해야 우리는 진실 속에 정의라는 힘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말로 이루어지지 않고, 지난한 진실의 행위로 쌓여지는 정직한 노동의 결과 역사이다.

말은 허무하나, 끝까지 진행되는 진실의 행위 반복은 시간이 가며 인생들에게 치유를 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다 허공에 맴도는 힘 없는 삶에 기진해서 지쳐 갈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애쓰고 결과는 주님이 이루실 것을 믿고 가다 주님 품에 안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진실을 붙잡고 있다면 조바심을 넘어서서, 끝까지 그 진실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라.

“정의로운 사람이 힘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애로울 수 있을 때, 이 세상은 밝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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