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희 목사(성민교회, 교회실사후속처리위원장)

▲ 김종희 목사(성민교회, 교회실사후속처리위원장)

총신 사태가 교육부 실태조사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을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대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그동안 전산실을 점거하고 컨테이너로 강의실을 막으며 극단적인 투쟁으로 교육부 실태조사를 끌어낸 것이 옳은 일을 한 성공이란 말로 들린다. 금번 교육부의 개입은 총신 측이 용역을 동원하고 문을 뜯는 등 어리석음도 큰 몫을 했다. 말로는 장자교단하면서 자정능력을 잃고 외부의 힘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지 않은가.

부부가 도저히 대화가 안되어 싸우다가 경찰이 출동하였다면 그 집 자녀들은 아빠 엄마 잘했다고 하겠는가. 한 교회에서 당회의 분쟁이 극심하여 노회가 조사처리위원회를 구성하여 나왔다면 교인들이 목사 장로 잘했다고 하겠는가. 그리고 임시(관선)이사 나오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임시이사가 나와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임시이사가 나오려면 현재 이사의 취임승인을 취소해야 하는데 원대로 된다는 보장도 없고 설사 그렇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취소 당한 이사가 억울하면 소송을 제기하여 소송전에 휘말릴 수 있다. 총장이 해임당할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임시이사가 종전이사를 배제하고 선임된 대학의 이사 선임권을 갖는 것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종전이사를 배제하고 새로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하여 웃을 일은 아니다. 임시이사가 누가 나올지 모르지만 총회와 운영이사회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다면 몰라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만약 현재 앞장서서 극단적인 투쟁을 하는 총회나 총신의 세력을 총신을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적폐로 본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현재 총장과 재단이사가 물러나면 총회 전체의 총신이 될 수 있는가? 또 다시 총회를 대변하여 앞장섰던 몇몇 정치인의 총신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될 바엔 지금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총신이 총회 품으로 돌아올 때 어떻게 총회 전체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가에 대한 청사진 제시가 지금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기득권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다. 사실 그런 의심이 든다. 깨끗이 청소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집을 짓도록 넘겨주기보다는 전리품(?)을 취하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재단이사회의 말대로라면 교수 중에도 적폐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임시이사가 총회와 총신을 싸잡아 문제 있는 집안으로 보아 독자적인 길을 간다면 우리 교단은 대처할 길이 없다. 임시이사의 종전이사를 배제한 이사선임권에 대하여 헌법소원까지 갔던 이유는 본질적으로 학교법인의 지배구조를 변경하여 사학의 공립화를 초래할 수 있고 보상없는 재산권의 수용이 가능한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임시이사가 나오면 우리 교단과 관계없는 그림을 그려도 말 못하는 백지를 제공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또 임시이사가 나왔을 때 서로 신임이사로 선임되기 위하여 우리 총회 안에서 끊임없는 줄대기와 알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총신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분투하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극단적인 투쟁을 하는 데 이견을 말하면 소위 총장 편이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총회가 극단적으로 투쟁하는 측과 총신측 두 그룹으로 양분된 것은 아니다. 지금 앞장서서 투쟁하는 이들이 옳아서 침묵하는 것도 아니다. 총신 편이란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다. 비열한 정치는 목사 장로가 같은 목사 장로를 죽이는 것을 정치 조금 한 사람은 다 알지 않는가. 총장이나 재단이사도 총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믿는다. 정치적으로 대립되다보니 죽지 않기 위하여 변경한 정관이 사유화의 큰 오해를 받고 있으나 선지 동산인 총신을 사유화하고 피똥 쌀 일을 하겠는가?

피차 교단 망신시키는 일은 좀 그만하자. 지금이라도 대화가 필요하다. 총신이 대화를 원했다. 총회를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총회장이다. 실행위원회에서도 총회장에게 전권을 주지 않았는가? 총회장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 누가 아무리 똑똑해도 총회장 밑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해 주어야 한다. 과거의 예를 보면 본연의 위치를 떠나 험한 말, 험한 행동하였던 학생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때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해 주어야 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진리가 틀리는 법은 없다. 다 망하는 싸움을 중단하자. 부활절을 맞이하여 총회와 총신에서 희망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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