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획] 사적지 지정 앞둔 총회 신앙유산 ① 군산 구암교회

만세행렬 이끌던 숱한 순교열사 배출 … 다양한 애국신앙 기념행사 통해 민족교회 정신 계승

총회와 전국교회의 긍지가 될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와 순교사적지 후보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호남의 어머니교회라 불리는 전주서문교회,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 발원지인 군산 구암교회, 순교의 핏방울이 여전히 선연한 영광 법성교회, 영남을 대표하는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덕 송천교회, 빛고을의 희망이 되었던 광주양림교회 등이 그 주인공이다.
빛나는 역사와 감동적인 헌신의 이야기들을 간직한 이들 공동체는 교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이미 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교단의 자랑거리로 내세우기에 손색이 없다. 앞으로 본 지면을 통해 이들 공동체를 차례로 찾아가는 여정을 5회에 걸쳐 진행한다. <편집자 주>


구암동산으로 오르는 길목이 겨우내 기다려온 반가운 봄소식처럼 말끔히 새 단장 됐다.

▲ 구암동산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구암동산 정상에 조성된 조형물.

‘군산삼일운동역사공원’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입구를 장식하고, 길 양편 벽면에는 이곳을 복음의 땅으로 일구었던 구암교회와 영명학교의 옛 풍경 그리고 약 100년 전 바로 이 장소에서 발원한 만세행렬을 상징하는 디자인들이 새겨져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글귀도 눈에 띈다.

먼저 나타나는 건물은 구암교회의 옛 예배당이다.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자태는 그대로이지만, 2007년 군산시에 기증해 군산삼일운동기념관으로 변신했다. 이 기념관에는 군산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진 항일투쟁의 역사와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만세운동과 독립항쟁의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배움터가 되고 있다.

특히 천안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문용기 열사의 피 묻은 의복을 고스란히 재현한 전시공간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이곳 구암동산에서 영명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문용기 열사는 한강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인 군산 3·5만세 의거에 이어 익산 장터에서 벌어진 4·4만세운동 당시, 만세행렬의 선봉에 서서 지휘하다 일본경찰의 칼날에 온 몸이 베인 채 순국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군산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자랑이다.

어디 문용기 뿐일까. 영명학교를 졸업한 후 세브란스 의전학생으로 재학 중에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지자 독립선언문을 몰래 품에 숨기고 고향 땅으로 찾아온 김병수, 그로부터 독립선언문을 전해 받고 태극기를 제작해 만세운동을 준비한 김병수의 스승 박연세와 이두열, 누군가의 밀고로 이들이 일본경찰에 구인되자 격분하여 학생들을 이끌고 석방시위를 벌인 영명학교 교사 김윤실 등 숱한 이름이 구암동산이 배출한 보배들이다.

▲ 구암교회 성도들과 옛 영명학교의 후예들이 군산 3·5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진을 펼치는 중이다.

해마다 삼일절이 되면 이 기념관 앞마당에서는 그 날의 함성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여 추모식을 갖는다. 1919년 3월 5일의 그 날처럼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저마다의 손에 태극기를 꼭 쥐고 만세를 외치는 함성이 크게 울려 퍼진다.

구암동산에서 출발해 군산경찰서 앞을 반환점으로 돌아오는 만세행렬에는 구암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영명학교의 후예들인 군산제일고와 영광여고 학생들도 참여한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채 하얀 옷차림으로 씩씩하게 벌이는 행진은 마치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당당한 행군을 연상케 한다.

재현행사 외에도 삼일절기념예배, 역사사진전, 어린이 글짓기·그림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구암교회와 군산시가 힘을 합쳐 결성한 군산삼일운동기념사업회를 통해 매년 구암동산 곳곳에서 개최된다.

매년 이 장관을 내려다보며 우람한 품으로 열사의 후예들을 감싸 안아주는 존재가 구암교회 현 예배당이다. 건축된 지 이제 막 10년을 지났을 뿐이지만 ‘호남선교 기념예배당’이라는 별칭을 단 이 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다.

▲ 구암교회가 호남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며 건립한 현 예배당. 정면의 기둥에는 호남선교의 개척자들인 미국남장로교 7인의 선발대원 이름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그 역사는 기미년으로부터도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남장로교에서 파송한 7인의 선발대가 호남지방 선교에 착수한 1893년, 그로부터 2년 후 전킨(한국명 전위렴)과 의료선교사 드루(한국명 유대모) 그리고 이들의 어학선생 역할을 한 장인택 조사가 군산 땅을 밟은 그 시절의 숨결이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생생히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건물을 떠받치는 일곱 개의 기둥에는 레이놀즈 테이트 데이비스 등 7인 선발대의 고귀한 이름 하나씩이 새겨졌고, 이들 선교사가 타고 다닌 황포돛배 선교선의 모습과 구암동산에 활기를 더해주던 영명학교 그리고 예수병원 분원의 흔적들이 예배당 곳곳에서 마치 숨은 보석들처럼 발견된다.

실제로 구암동산에 세워진 군산선교부를 통해 군산 김제 익산 등지는 물론이고, 서천 장항 등 충청도에까지 수많은 이들의 영혼 위에 생명의 빛이 쏟아졌고 마을마다 구원의 복음이 신선한 바람처럼 퍼져나갔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구암교회는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을 간직하게 됐다. 호남·충청에서 최초의 세례교인이 여기서 나왔고, 한국인 최초의 의료선교사가 여기서 파송되었으며, 한국 최초의 학생야구가 여기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구암교회 예배당 꼭대기의 전망대를 비롯해 여러 층에 걸쳐 설치된 전시실에는 그 세월 속에 빚어진 갖가지 사건들과 인물들이 빚어내는 하모니를 만끽할 수 있다. 선교사들로부터 전파된 복음이 어떻게 힘없는 식민지 백성들의 가슴에 구국항쟁의 선봉에 세우는 용기를 이끌어냈는지, 그리고 1세기를 훌쩍 넘어선 역사로 면면히 이어져왔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더 반가운 소식은 이 소중한 시간들을 찬찬히 정리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 머잖아 마련된다는 사실이다. 군산시가 2012년 시작한 구암동산 성역화사업이 완료를 앞두고 그 성과를 착착 내놓는 가운데, 오랜 숙원이었던 군산삼일운동100주년기념관이 개관을 앞두게 된 것이다.

▲ 구암동산이 군산삼일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새롭게 선보인 벽화거리의 모습.

과거 영명학교의 모습을 그래도 본떠 구암동산 위에 건립하는 이 건물은 군산지역 기독교선교역사와 만세운동의 기록들에 생생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입혀 관람객들이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시간여행에 몰입하도록 꾸며지고 있다. 기존의 기념관과 전시실들의 자료가 대부분 이곳으로 옮겨지고, 현재의 기념관은 순례객들을 위한 영상실로 리모델링할 예정이다.

현충시설로 지정된 군산3·1운동 기념비와 기념관 외에도 선교사들의 순직비, 충혼상징조형물 등 새로운 볼거리들 역시 차례차례 구암동산에 들어서는 중이다. 당초 이곳에 조성되었다가 전주로 옮겨간 전킨 선교사와 어린 세자녀 등 선교사들의 묘역을 이곳에 다시 조성하는 방안도 모색되는 중이다.

김영만 목사는 “총회로부터 역사사적지 지정이 검토된다는 소식을 듣고, 2004년 국가로부터 보훈문화상을 수상한 이래 최대의 경사로 여기며 온 교회가 크게 기대하는 중”이라면서 “구암교회를 민족교회로 우뚝 세운 믿음의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며, 앞으로도 위대한 예수문화를 꽃피우는 공동체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김영만 목사는 온 교회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구암동산 성역화사업에 임한다고 말한다.

교회 주변이 군산삼일운동기념공원으로 매일처럼 조금씩 변신하는 풍경을 지켜보며 김영만 목사(구암교회)는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사실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은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고, 도중에 좌초할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넘겨야 했다.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장애물을 뛰어넘었고, 드디어 최종 골인지점을 눈앞에 두게 됐다.

“제가 구암교회에 부임할 무렵이 마침 3월 즈음이었습니다. 한참 이사 계획을 세우는 중인데 교회에서 미리 와주실 수 없느냐는 연락이 온 것이에요. 삼일절 만세행렬의 선봉을 새로 오실 담임목사가 맡아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죠. 구암교회 식구들이 얼마나 삼일운동기념사업에 책임감과 자긍심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교우들이 구암동산 성역화에 갖는 애정과 성취의 기쁨이 크기가 어떠한지도 잘 알고 있다는 김영만 목사는 앞으로 구암동산이 단지 구암교회만의 긍지와 자랑이 아닌, 한국교회의 보배가 될 수 있도록 키워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삼일운동 발원지라는 사실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발걸음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구암동산에 기념관이 완공되면 다음세대에 애국신앙을 전수하는 교육의 장으로 적극 활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큽니다.”

앞으로 기념관 완공 후 이를 잘 활용해 운영하는 일과, 군산 선교의 주역이었던 전킨 선교사의 묘역을 정비하는 일이 당장의 큰 과제인 만큼 이 부분에 총회와 전국교회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김 목사는 덧붙인다.

“우리 교회를 방문해 역사전시관과 삼일운동기념관을 꼼꼼히 살펴보시고 안내와 설명에 진지하게 귀기울여주시는 분들, 매년 삼일절이면 만세운동 재현행사에 함께 해주는 시민들과 학생들, 기념예배 때마다 설교자로 찾아와주시는 황명택 목사님 등 감사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교우들과 함께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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