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갱신 출발점 되다

48개 도시, 72명 개혁자들의 발자취 담아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서 한국교회는 교회개혁을 위해서 많은 다짐과 행사를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500년전 종교개혁의 뜨거운 현장이었던 유럽 도시들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지금까지 개혁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겠다.

이 책 <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미하엘 벨커 등 엮음, 대한기독교서회)는 종교개혁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48개 도시와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72명의 개혁자들의 족적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스위스의 제네바 편을 보자. 칼빈이 방문했던 1536년 제네바는 혁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사보엔 가문의 지배권으로부터 해방을 기다렸고 종교적으로는 시의회가 가톨릭 미사를 금지하고 개신교 종교개혁을 선언하므로 그 변화를 이끌 지도력이 필요했다. 칼빈은 강력한 종교개혁을 추진했다가 비판에 직면해서 1538년 추방을 당했다가 1541년 귀환했다. 대표적인 개신교 도시였으나 로마카톨릭의 영향은 상당해서 그들의 반대로 스위스 연방에 200년동안 가입을 못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금융과 외교의 중심이며 수많은 국제기구가 있는 세계적 도시가 된 것은 종교개혁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네바에는 종교개혁국제박물관과 성 베드로 교회, 그리고 파렐과 칼빈, 베자와 녹스의 상이 있는 종교개혁의 벽이 있다.

보름스 제국회의와 바르트부르크에서 강제로 체류했던 마르틴 루터는 1522년 비텐베르크로 돌아와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시 논쟁을 벌였으며 공동체와 교회를 세웠다. 예배를 개혁하고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한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다.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에 있는 비텐베르크에는 루터가 95개 논제를 문에 써붙인 성교회, 루터가 강론한 시립교회, 루터가 살던 수도원들이 남아있다. 이들 종교개혁 관련 유적지들은 루터의 고향 아이슬레벤의 유적지와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이밖에 우리는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 보름스, 스위스의 바젤, 취리히, 프랑스의 베아른, 리용, 헝가리의 데브레첸,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등에서 진행됐던 종교개혁의 모습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여러도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종교개혁은 오래도록 지속된 치열한 논쟁과 핍박 가운데 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출교당했고 고문받았고 화형됐다. 데브레첸에서는 41명의 목사가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도시들마다 뛰어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연구하고 교육하고 출판을 했다. 또 이름없이 순종했던 각계각층의 성도들이 힘을 합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의 어느 하루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던 만큼 그 영향은 유럽 사회 전역에 퍼졌다. 학교가 설립됐고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했으며 유럽이 국제화됐으며 교회는 조직화됐다.

저자들은 유럽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와 교수들이어서 현장에 대한 이해가 깊다. 수많은 역사적 자료와 최근 사진, 참고문헌, 관련 사이트 안내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연구를 위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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