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건 목사(서울 재현고등학교)

▲ 정동건 목사(서울 재현고등학교)

4년 전, 고3 수시원서 접수로 한창 바쁠 때의 일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기소개서(자소서)를 들고 찾아온 제자들을 상대해준 후, 잠시 비는 시간을 틈타 수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점심기도회 리더와 친구 두 명이 교목실에 찾아오더니,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성경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고 했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면서 놀란 것은 기초적인 질문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신앙교육을 제대로 받는다면, 누구나 배우게 될 수준의 것들이다. 그래서 궁금해진 나는 제자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교회에서 소요리문답 같은 것은 안 배우니?” 그러자 돌아온 제자는 오히려 “그게 뭔데요?”라고 물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 중요한 것을 왜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설마 다른 성경공부는 하겠지?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니, 그 친구의 교회는 성경공부 프로그램 자체가 없다고 했다. 순간, 중3 겨울 수련회가 기억났다. 그 수련회에서 처음 배운 소요리문답이 내 신앙의 근간이 되었다. 그날 제자들과 조금 터무니없는 약속을 했다. “수능 끝나면 어차피 할 것 없으니까, 그때 소요리문답 스터디를 한 번 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고3 소요리문답 스터디반을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스터디를 하면서 들었던 제자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보람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담하다. “이런게 있다는 것을 처음 봤어요.” “신앙의 기초를 잡아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 무슨 일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요.” “왜 교회에서는 이런 걸 안 가르치죠?”

청소년 사역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다양한 캠프 프로그램, 시중에 출판된 다양한 소그룹 교재들은 청소년 사역에 무척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캠프는 천편일률적인 주제이며, 성공에 대한 욕망을 ‘비전’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중에 나온 교재 역시 다를 바 없다.

학교에서 10년을 재직하며 깨달은 지극히 단순한 진리가 하나 있다. 기독교교육의 기초는 무엇보다 성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교리반을 3년 운영하고, 좋은 추천도서를 알려주며 격려한 제자들은 그 이후 최소한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나 역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제자들과 말씀으로 씨름하는 시간이다.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고, 성경대로 살아가지 않는 어른들을 목격한 청소년과 청년세대의 급속한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한국교회도 우리가 경계하는 유럽교회의 그 모습대로 변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보다도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치면 반드시 변한다. 지금 씨를 뿌리면, 10년 뒤 20년 뒤에는 반드시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지금도 묵묵히 씨를 뿌리는 일에 헌신하시는 이름 없는 청소년 사역자들, 교목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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