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 어떻게 구원을 확신하는가(존 맥아더, Korea.com)

이 책은 ‘당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구원받았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저자는 자신의 죄를 정말로 용서받았고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존 맥아더 목사는 베드로후서 강해를 하면서 여덟 번에 걸쳐 구원의 확신에 대해 나눈 적이 있다. 설교가 끝난 뒤에 교인들은 그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 전 구원에 대해 확신한 적이 없어요. 오늘 처음으로 확신을 가졌어요!” 그들은 이 주제로 설교해 줘서 고맙다며 계속 감사인사를 건넸다. 또한 성경을 통해 구원의 확신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했다.

그 일 이후 저자는 구원의 확신 문제를 성경적으로 분명히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일생일대의 기념비적 사건을 받아들이고도 어떻게 그 결과를 확신하지 못하는지 저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구원의 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구원받은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런 확신이 없는 삶은 의심과 두려움, 비참함과 영적절망 가운데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진짜 확신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함으로써 영원히 구원받았다는 보장과 확신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무너뜨린다. 이것이 네덜란드 신학자의 이름을 딴 아르미니우스주의다. 아르미니우스주의(혹은 알미니안주의)는 영원히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태만해지기 쉽다고 주장한다. 이런 믿음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이기도 하다.

구원에 인간의 노력이 개입한다는 신학을 따르게 되면 구원에 대한 진정한 보장이나 확신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언제든 자기 의무를 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신학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성경적 신학에는 확신의 교리가 따라온다. 사도 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라고 말했다.

물론, 구원받고도 그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여행을 즐기는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 여정을 즐기기 원하신다.

우리가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영생을 약속하기 때문이다(요 20:31). 따라서 구원에 대한 성경말씀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에베소서, 요한복음, 히브리서에 나오는 영원한 구원의 약속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정말로 그렇게 약속하셨다.

하지만 이런 약속들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들이 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은혜에서 떨어진 자는 무슨 뜻일까? 한 번 빛을 보고도 타락한 사람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히브리서 말씀은 또 무슨 뜻인가? 이 책은 이러한 성경말씀들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요한복음 6장 37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저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끊임없이 영원한 구원을 의심하면서 살지 말라. 하나님은 주님의 자녀인 당신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길 원하신다.”

 

■더 읽어볼 책

구원의 확신(존 C. 라일 지음, 생명의말씀사)

구원의 확신(R. C. 스프룰 지음,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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