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는 구원의 표지 또는 증거이다”

수년전에 화제가 됐던 <밀양>이란 영화가 있었다. 아들을 유괴살인범의 손에 잃고 괴로워하던 어머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위안을 얻어간다. 마침내 그녀는 신앙의 결단을 하고 살인범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그 살인범은 “하나님이 자신을 이미 용서하셨다”는 말로 어머니의 마음을 찢어놓는다. 살인범은 범죄 이후 자기가 죽인 아이의 어머니에게 한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어머니가 찾아와 참으로 힘겹게 용서의 뜻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에 관심 없어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스스로 선언했다.

외부에서 많은 이들이 기독교공동체의 잘못 또는 우리 개인의 허물을 지적할 때 우리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족하다고 거듭 말한다면 영화 속의 모습과 비슷한 꼴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교회의 타락과 쇠퇴의 원인을 교회 안에서 찾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외부의 지적에 귀를 열어놓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주로 정의롭지 못한 기독교인의 행동에 대해서 그는 구원을 받은 척 했던 사람이었다든지, 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구원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으니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에 대해 이 책 <칭의와 정의>(새물결플러스)는 “칭의가 의롭게 된 신자의 삶에서 ‘행위’와 분리될 수 없으며, 정의로운 삶의 실천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칭의론에 대한 언급은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기피하는 논의 주제였던 것이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면 은혜 구원과 그리스도를 통한 유일한 구속 교리를 흔드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부담을 감안하여 예장합동 예장 순장 출신 등 보수적인 교단 출신 신학자를 포함한 14명 학자들의 논문을 담았다.

신구약의 칭의와 관련된 다양한 구절들을 원어와 문맥을 분석하면서 정확한 의미를 따졌으며 해당 본문을 깊이있게 주해했다. 한 예로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두 그룹이 모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양쪽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었고 권능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심판주의 심판 기준은 분명히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푼 선한 행위였다. 로마서 1장 16절의 근거가 된 하박국 2장 4절을 비롯한 구약의 칭의 관련 구절들에서도 의로움은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문제였다고 밝혔다. 사도바울이 유대주의자들의 행위 구원 사상을 비판했다는 해석 외에도 그들의 제사의식이나 할례 등 정결법에 대한 고집스러움을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책임편집을 한 김동춘 교수는 “그리스도인은 행위를 통해 구원을 획득할 수 없지만 행위를 통해 구원을 보유하고 지키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행위는 구원의 수단은 아니지만 구원의 표지 또는 증거”라고 말했다. 신학적으로 이견이 있는 학자들의 글도 있지만 한국교회의 갱신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581쪽/2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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