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교회음악과 교수

일반적으로 언어는 그것이 사용되는 상황이나 장소,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할렐루야>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같은 곳에서 노래할 때 우리는 대체로 ‘연주’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동일한 곡을 교회에서 예배 중에 노래할 때에는 ‘찬양’이라고 한다. 예배 중에 하나님께 드려진 곡에 대해 “오늘 찬양 어땠어요?”라고 하지 “오늘 연주 어땠어요?”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찬양’과 ‘연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첫째, 찬양은 그 대상이 하나님이시지만, 연주는 대체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대상으로 ‘연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가 된다. 교회음악에서 우리는 결코 사람을 찬양하지 않는다.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신 것이다. 반면에 연주는 일반적으로 사람들, 즉 청중을 대상으로 한다. 대부분의 연주회장에서 펼쳐지는 연주는 청중이 주된 대상이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찬양은 신앙이 중심이지만, 연주는 음악이 중심이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이라 하더라도 기독교 신앙이 담겨 있지 않으면 찬양이라고 할 수 없다. 신앙은 찬양에서 필수적이고 중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반면에 연주는 신앙이 없어도 가능하다. 신앙이 없어도 음악이 좋으면 훌륭한 연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주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음악이며, 연주자는 당연히 음악적인 부분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셋째, 찬양은 그것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지만, 연주는 연주자 자신을 드러낸다. 찬양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주의와 관심의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지게 되고 그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연주는 그렇지 않다. 연주에서 관심의 초점은 연주자와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이다. 따라서 결국 연주자 자신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물론 연주자가 연주하는 그 음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청중의 입장에서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연주자와 그의 음악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으로 예배 안에서 행해지는 음악이 찬양인지 연주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찬양대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는데 그 찬양에 마음으로 동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회중이 박수를 친다. 마치 연주회장에서 연주자가 연주를 마쳤을 때 청중이 연주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또 특송이나 봉헌송을 드리는 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연주회장에서 연주자가 청중에게 인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예배 중에 하나님께 드려진 음악에 대해 그리고 찬양한 이들에 대해 회중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한다. 마치 연주회장에서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이 그 연주와 연주자에 대해 평가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요컨대 오늘날 예배 안에서 찬양의 대상이 과연 누구인지 모호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찬양곡에서 음악적인 부분들에만 관심을 쏟고 그보다 더 중요한 신앙적인 면은 간과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찬양하는 이들이 하나님보다 더 조명을 받고 박수를 받는 경우들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예배 안에서 행하는 음악은 과연 찬양인가? 연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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