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2001년 3월 14일 87세의 나이로 로스엔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레이폴드 페이지가 사망하자 미국의 세계적 케이블 방송인 CNN은 한 유태인의 죽음을 세계에 타전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나치에 포로가 되었던 사람으로 폴란드에서 교사를 하던 유태인이었다. 그는 나치에 의하여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뒤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의 도움으로 그가 운영하던 무기 공장에서 연명하게 된다. 그 덕분에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비명에 횡사당하는 화를 피하게 되었다. 물론 함께 일했던 다른 유태인 1100명과 같이 였다.

지금 폴란드에는 만여 명의 유태인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 LA시의 비버리힐즈로 이주한 페이지는 이곳에서 가죽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벌게 되었다. 그리고 40여 년동안 상점을 운영하면서 상점에 방문하는 작가들에게 자신과 1100여 명의 유태인을 살려준 오스카 쉰들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레오폴드 페이지의 집념은 마침내 호주의 최고 작가 토마스 카넬리라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되고 그리하여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 1982년 세상에 출간된 소설 <쉰들러 리스트>였다.

카넬리는 소설 <쉰들러 리스트>에서 “페이지의 열의와 집념으로 탄생한 이 작품을 그와 오스카 쉰들러를 추모하는 이들에게 바친다”고 밝히고 있다. 페이지는 이어 세계적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매주 전화를 걸어 <쉰들러 리스트>를 영화로 만들어 줄 것을 호소한다. 그는 소설의 한계를 알았기에 자기와 1100명의 유태인들을 살려준 쉰들러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된다는 집념에 불타올라 있었고,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이 이야기로 아카데미상을 탈 수 있다”며 영화 제작을 설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스티븐 스필버그는 토마스 카넬리의 원작 <쉰들러 리스트>를 영화화했고, 1993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등 7개 부분을 휩쓸어 세계 영화의 한 획을 긋게 되었다. 평생 보은해야 된다는 집념으로 살았던 이 유태인을 세계인들은 기억하고 있다. 21세기 범람하는 물질문명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인지상정마저 허물어져가는 이 때 레오폴드 페이지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선한 사마리아인 오스카 쉰들러를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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