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기독교 인성교육 필요하다

인성은 창조된 복을 받은 사람만의 고유은사 … 하나님 말씀인 성경으로 다듬고 새로워져라

인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품이다.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이 인성의 양과 질 혹은 교육과 환경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는 선천적 혈통적 유전적 요인도 배제할 수 없으나 2차적 교육과 문화 환경 속에서 인성, 즉 인격과 품격은 만들어지고 갖추게 된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은 곧 인간의 근본인 인성을 파괴시키지 않고 유지하며 인격과 품격을 지키는 것이다.

1. 프로이드의 인성 분류

▲ 배치영 목사
(현리교회)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의 성향을 ‘이드’와 ‘이고’와 ‘슈퍼이고’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드’란 인격의 바탕을 말한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원초적인 욕구를 말한다. ‘이드’는 정신 에너지의 근본이고 본능의 뿌리이다. 제대로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무질서하고 맹목적이며 이기적이고 얻기만 하려는 성질이다. 이에 비해 ‘이고’는 현실 세계를 접하면서부터 생기는 것인데, 인간의 인격을 지배하고 조절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령탑이다. ‘이드’와 ‘슈퍼이고’를 현실세계와 부합이 되도록 조절하는 조정관의 역할이 바로 ‘이고’의 역할이다. ‘슈퍼이고’는 우리 인격 가운데 있는 심판기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기준을 말한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구별해주는 기구이기도 한다.

프로이드가 말한 인간의 품성을 요약해보면 인간은 원초적인 자기 욕망에서 현실적인 자아를 찾아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자아의 추구가 인간의 도덕적인 가치나 전통적인 가치를 획득한다고 하여 과연 이루어지는가? 여기에 한계가 있다. 인간의 인성이 완벽하게 다듬어지고 회복되며 치유되고 해결되는 것은 무리이며 결국 세상적인 방법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2. 성경 속 인성 고찰
①범죄한 인간의 타락된 인성은 성경 곳곳에서 나타난다. 오늘날 인간 군상들의 잔인하고 무서운 죄악의 근성은 수천 년 전이나 다름없다. 때론 범죄와 죄악의 원인을 외부적 요인으로 문화나 환경, 조건을 말하지만 근본의 인성의 부재, 타락, 오염에서 비롯되었다. 부부가 서로 고발하고(창 1:12), 형제가 형제를 죽이고(창 4:8), 살인이 시작되며(창 4:23), 자녀가 아버지의 수치를 고발하고(창 9:22), 부부가 서로를 불신하고 형제는 서로 기만하고 속이고(창 27:36), 제자가 스승을 저주하고(마 26:74) 팔았다(마 26:15).

인간의 인성과 인격과 성품과 품성의 타락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창세기 6장 5∼7절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과 유대민족은 신령적 부자관계이다. 그러나 번번이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탓하시는 모습의 원인은 그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인성으로 인한 신앙생활이었다.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호 4:16),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호 9:1)고 했다.

②믿음으로 거듭난 인성도 성경 곳곳에서 나타난다. 요셉의 인성은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살면서 사람의 귀중함을 알고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건전한 인성의 인격자이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다윗의 감동적인 심성, 인성도 성경 여러 곳에 있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삼상 24: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삼상 26:11). 또한 좋은 인성의 소유자 빌레몬도 있는데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몬 1:1∼25)라 했다.

인간과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데 믿을만한 인성, 착한 성품, 갖추어진 도덕성과 윤리관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성품의 공유적 속성인 인격이다.

3. 인성교육의 필요성
인성은 곡식을 심는 밭과 같다(마 13:18∼23). 인성이 선하고 고와야 양심도 성품도 품성도 선하고 곱게 나타나며 인간으로 인간다운 인격의 소유자가 된다. 인성은 선천적으로 부모에게 유전되어짐도 있으나 후천적 교육에 의해 다듬어지기도 한다. 선천적으로 좋은 유전을 부모로부터 받았다면 세파 속에 휘둘리지 말고 잘 대처하며 잘 보존하고 잘 살아야 한다.

만약 후천적 교육으로 인성을 다듬으려면 자신의 못된 육적 기질을 먼저 제거하고 수많은 도덕적 기준에서 수양과 인격을 함양해야 한다. 이것이 자신을 인격적 사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고후 5:17). 또한 사회적 일원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공동체의 순수적 무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을 볼 때 가히 인성부재의 시대라 하겠다. 일반 세상의 세속적 지대는 불문가지이고 교회 안의 신앙적 공동체 속에서 수없는 인성 파괴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도라는, 직분자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부패적이고 타락한 인성성의 종교적 행태를 율법에 얽매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장로와 율법사, 서기관들의 행위를 복음서에서 보는 듯하다. 이들의 이기적 종교성은 급기야 구속주 메시아까지 십자가에 처형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이기적 인성은 선과 덕을 수련하는 종교인들이라도 오히려 반목과 불신만 극대화시킨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이라도 복음을 근간으로 인성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성경이 말하는 바처럼 기독교 인성교육은 범죄 전의 하나님 형상으로 온전하게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 인성교육의 방법
인성교육은 한 마디로 ‘인간다운 인간을 새롭게 다듬고 만드는 것’이다. 이 교육은 먼저 가정에서 부모에 의한 자녀교육이다.  예의를 가르치는 교육, 도덕 종교교육, 성교육, 순결교육 같은 것으로 말에 의한 지도뿐 아니라 태도, 행동에 의한 지도를 말한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무의식 중에 또는 의식적으로 언어, 생각, 태도, 행동을 배우며 교육되어지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이 있는데, 학교교육은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인성을 배우게 되므로 인성의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분별하는 학적 능력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배움이 사회생활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 때 경쟁적 구도에 함몰되어 교육의 실효를 얻기가 힘들다. 오히려 배운 지적, 학적 능력을 사회기능에 역으로 적용하여 인성을 망가트리고 기계적 인간으로 변질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의 병적 사회현상은 학교교육과 사회생활의 부조화로 인성의 본질을 찾기 어렵고 인성교육의 불가능적 면만 확인시켜주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성경은 사회적 병폐에 시들어진 인간들의 인성을 치유하고 회복시켜주는 마지막 방법이다.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딤후 3:16∼17)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 사람이 하나님 사람답게 온전해지려면 하나님 말씀인 성경으로만 다듬어지고 새로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배우고 확신하면서 인성의 중심핵인 양심을 신앙적 믿음(딤전 1:19)과 결부시켜 열매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인성은 자신의 삶 전체를 빛처럼 살게도 하고, 어둠의 터널 속에 갇혀 살게도 한다(엡 5:8). 바울 사도는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말세에 인성이 고갈되는 때가 오게 되는데 너는 이것을 미리 알고 목회전선에서 잘 대처하라고 권면한다. ‘사람들이 자기만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 교만, 비방, 거역, 감사치 않음, 거룩치 않고, 무정, 원통함을 풀지 않고, 모함, 절제 못하고, 사납고, 배신, 조급, 자만, 쾌락하며…’(딤후 3:1∼5)라고 했다. 또 인성이 온전치 못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사랑보다 세속을 더 사랑하고, 경건은 모양뿐이고 능력은 없다’(딤후 3:4∼5)고 말세의 인성부패에 대한 파생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피력하고 있다.

5. 성공적인 인성
하나님이 세상 창조 시 ‘자기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만들고’(창 1:26),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했다. 또한 사람에게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라는 다섯까지 복도 명하셨다. 사람이라는 이름도 복을 주시면서 지어주신 것이다. 창조 당시만 해도 인간은 복덩어리였으며, 인성 자체도 하나님의 성품인 신성 못지않게 신선하고 거룩한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들에게 스스로의 인성 회복을 갈구하신다. 아니 이보다 더 거룩한 신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하신다(레 11:45). 그러기 위해 체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기독교 인성교육을, 성경을 통한 교회 교육을 잘 수립해서 2018년 신년부터 실시해야 한다. 오늘의 인성 부재의 사회 전반적 행태를 혐오하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기독교 공동체의 요람인 교회에서 어린이뿐만 아니라 청년과 장년들에게도 주일마다 성공적인 기독교 인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실시해야 한다.

인성이란 인간됨됨의 가치적 언어인데 종교적 공동체 속에서도 인성부족으로 많은 문제점들이 수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초대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했다고 했으나, 자그마한 일로 다투고 소란을 피우는 모습도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행 6:1). 매주일 황금과 같은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이기적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교만과 아집으로 공동체를 훼파하고 서로 불신과 반목을 하는 신앙인들이 영성이나 신성추구보다 우선되어야 할 부분이 인성인 것이다.

인성은 하나님 형상과 모양으로 가장 신비롭게 창조된 복을 하사받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은사이다. 세태가 빠르게 변질되고 부패하고 타락되지만 기독교인만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근간으로 기독교 인성교육을 철저히 가르치고 배우자. 우리는 재림주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마지막 세상의 그루터기가 되어야 한다(사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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