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와 만나다] ① 임종구 목사가 묻고 장차남 목사가 답하다

▲ 원로와 대화에서 장차남 목사(오른쪽)는 지난해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아 개혁과 갱신의 구호는 난무했지만 정작 자신의 종아리에는 회초리를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타자의 갱신만 요구하는 들보는 공허한 '메아리'라는 것이다.

교단의 힘과 역량 분산되어선 안돼 ... 총신대 정체성 바로잡는 일 가장 중요
세상과 구별없는 교회 성경으로 돌아가야 ... 공도 바로 세우면 바닥치고 올라갈 것

한국교회의 원로이신 장차남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약속을 잡은 후 원로의 입에서 시대를 읽는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까 궁금했다. 먼발치로만 뵈었던 장차남 목사의 첫 인상은 걸음걸이와 목소리에서 단아단호(端雅斷乎)의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최근에 내신 <목회성찰>을 서명하여 건네주시면서 <기독신문>에 연재한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온천제일교회에서 32년간 목회하시고, 또 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한 한국교회 원로로서 그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읽고 진단하고 있을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일성이 궁금했다. 2017년 한 해를 보내고 2018년 새해를 맞는 소회를 묻자 잠시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내 거침없는 격정을 토해 내셨다.

“2017년은 북핵문제와 전쟁위기 때문에 한국이 비상상태라 할 만큼 위기가 계속되었고, 정치도 혼란과 갈등이 컸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해소되고 생산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국민 모두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합해야겠습니다. 교계를 보면 지금까지는 주로 동성애와 이슬람문제가 주요 이슈였는데, 최근에는 종교인 세금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단을 살펴볼 때는 총회와 총신의 갈등이 크지요. 일차적으로 총회와 총신의 관계에 있어 총신대학교 정관의 원상회복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모든 부분이 소위 바닥이라면 새해에는 바닥을 치고 올라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정반합이라는 말이 있듯이 새해에는 새로운 변화가 있으리라 소망해봅니다. 국가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저토록 신경을 쓰는 것처럼, 교회와 교단도 농어촌 미자립교회들을 살펴주어야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낙도와 농어촌에서 고생하신 목사님들 앞에서 늘 도덕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들보다 고생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외형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희생하고 성자적인 인격을 가진 목회자들에 대해서 늘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분들을 존경하고 또 배려하는 성숙한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교단과 나아가 한국사회를 향한 원로의 고뇌에 찬 소회요 덕담이었다. 세상이 능률위주가 되어 큰 규모의 목회를 하면 능력 있는 사람이고, 희생하고 성자적 인격을 가진 목회자는 무능하고 못난 사람으로 무시하는 현실에서 자신은 지금도 희생형·성자형 목회자들 앞에서는 늘 머리가 숙여진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니지 않은가. 덧붙여 노목사는 “젊을 때 목회적 성취를 위한 선한 야망을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하면서 “그것을 이루었을 때는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희생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목회 생태계의 감추고 싶은 민낯과 아픔을 고민해 온 흔적이 뚜렷했다. 목회자들의 일탈과 대형교회의 목회세습, 기성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공동체를 떠나는 수많은 가나안교인 증가 현상은 참으로 부정할 수 없는 오늘 한국교회의 현주소요, 얼굴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한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얼마나 요란했던가? 개혁과 갱신의 구호는 난무했지만 정작 회초리를 자신의 종아리에 내리치기 보다는 타자의 갱신만을 요구하는 들보의 종교개혁이 아니었던가? 이에 대해 장차남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너무 행사위주로 흘렀고 결국 한국교회가 새롭게 개혁하는 모멘텀으로 작동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라 해서 참 요란했지만 일회성에 머물렀고, 진지함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루터의 95개조항 제1문이 ‘회개’의 문제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작 회개는 없고 구호만 난무했지요. 또 종교개혁시대에 성경에서 길을 찾았듯이 오늘날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좀 딱딱하지만 교리와 신조, 그리고 성경에 정초를 깊이 두어야 합니다.”

원로의 지적과도 같이 칼뱅주의, 개혁주의를 부르짖지만 강단과 목회현장은 실용주의가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목사장립과 강도사인허, 임직식에서 장로회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및 대소요리 문답은 신구약 성경의 교훈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한다고 선서는 하지만, 정작 아무도 표준문서를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교단 신학교 커리큘럼에 조차 없다.

원로는 한국교회의 적폐 1호를 세속주의라 일갈했다. “한국교회의 적폐가 하도 많아서 한 가지를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굳이 한 가지를 든다면 저는 ‘세속주의’를 말하고 싶어요. 교회라 하면 거룩성이 있어야 하고, 신자라면 경건성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세상과 구별이 되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가 세상과 전혀 구별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세상이 교회를 신뢰하지 않아요. 그 원인은 분명합니다. 성경중심주의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기준인 성경의 기능이 사라지고, 신자들도 세상의 기준을 가져들어 왔어요. 그 결과 설교 강단이 강연으로 격하되었어요. 그리고 설교의 특수성이 없어지고, 급기야 강단에 아무나 막 올라가요. 강단에서 간증과 강연, 공연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또 듣게 되었어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세속주의는 물량주의와 권력추구로 표출되고 있다고 했다. 교회의 자존감을 지키지 못하고 권력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오면 아부하고 교회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영합하였다고 말했다. 원로의 진단처럼 우리 교단이 한국 최대 교단이 되면서 종교권력의 쟁투가 극에 달해 있고, 그 격전장이 총회와 총신이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총회와 총신의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깝고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장차남 목사는 총회와 총신의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을까? 마치 정답을 받아 적기 위해 스승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원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는 먼저 신학교의 문제를 단순한 문제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신학교의 문제는 곧 교단분리의 도화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총신은 교단의 신학교이며, 총회가 목회자 양성을 위해 만든 학교라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래서 각 노회가 목사후보생들을 선발해서 교단신학교에서 수학하게 위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뀐 총신정관은 마치 아담스 선교사가 세운 계명대학교와 피어선 선교사가 세운 평택대학교가 개인재단으로 넘어간 것과 같은 수순을 밟을 위험이 있습니다. 계명대학교와 평택대학교는 비록 교단신학교가 아니었지만 교단중심 신학교가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은 한국교회사에서 처음입니다. 역사적으로 신학교가 가는 곳에 언제나 교단이 생겼습니다. 김치선 박사의 대한신학교가 결국 ‘대신’이라는 교단으로 발전했고, 조선신학교가 결국 ‘기장’이 되었고, 고려파와 합신교단도 신학교에서 배태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다른 문제보다 총신 정관을 바로잡는 것이 여타 다른 모든 문제들보다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총신이 총회가 운영하는 교단신학교라는 점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다른 질문에서 달변가였던 원로는 총회와 총신에 대한 질문에서 원로는 매우 신중했고, 마치 눌변가처럼 극도로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힘이 분산되면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총회가 하나 되고 지혜와 역량을 모아 힘든 때를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대담한 탓일까? 대담 도중 잠시 쉬기로 했다. 원로의 얼굴에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미 식어버린 차를 몇 모금 마시고 개인 이야기로 주제를 옮겼다. 장차남 목사는 작년이 목사장립 50년이었다. 이를 기념해 자신의 목회를 돌아보며 <목회성찰>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원로가 목회하던 시대와 현 시대는 전혀 다르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목회현장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원로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옛날 목사님들을 오래 섬겼어요. 제36대 총회장 권현호 목사님 밑에서 6년 반을 배웠고, 제43회 총회장 노진현 목사님에게 6년 반을 배웠어요.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로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교회사정에 대해 많이 들었지요. 그때는 교단정치도 참 신사적이고 부드러웠어요. 순리적이었지요. 저는 그분들에게서 전통적인 목회를 배운 셈이지요. 그런데 노진현 목사님께서 젊은 목사들이 앞으로 이 험한 길을 어떻게 갈꼬 그러셨어요. 또 한병기 목사님도 똑같은 말을 하셨고요.  생각해보면 저는 한국교회 가장 전성기에 목회를 했다 싶어요. 그러나 성장기 때에 종교의 역기능이 배태되어졌고, 이제서야 그 문제가 드러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긍심과 아울러 자책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젊은 목사님들은 우리나라와 교회의 어려웠던 때를 너무 모르지 않느냐 생각됩니다. 안타까운 점은 오늘날은 목회자의 권위가 너무 떨어져 있어서 걱정입니다. 또 목회도 잘 안 되는 시대고요. 하지만 소명의식만 분명하다면 지금도 목회의 길에 소망이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원로는 자신의 목회와 인생에 대해서는 어떤 자평을 가지고 있을까? 그가 쓴 <목회성찰>에는 큰 딸이 “아버지는 목사로서는 100점, 아버지로서는 20점”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는 목회 100점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큰 딸이 고등학교 때 목회는 80점, 가정은 60점이라고 한 기억이 있는데 정작에 본인한테 물어보니 이제는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목사로서는 100점, 아버지로서는 20점이라고 해서 그렇게 적었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아버지는 목사로서 깨끗하게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원로는 자신이 상주출신으로 가정이란 목회의 부수 정도로 여겼다면서 가정에 대한 가치관이 부족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보니 아이 셋을 키우면서 대학졸업까지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역과 가정을 균형 있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이어서 강단과 설교, 목회자의 처신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곤혹스러울 수 있는 질문으로 대담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목회와 인생에서 최고의 공(功)과 과(過)는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 대담을 마친 뒤 임종구 목사(왼쪽)와 장차남 목사가 동행하고 있다.

“나는 물에 물 탄 것처럼 목회해서 이게 잘 잡히지 않아요. 온천제일교회에서 32년 있으면서 내 평생에 교인들로부터 노골적인 배척을 받아보지 않았다는 것, 정면 삿대질 받아보지 않았다는 것, 감사하게 생각해요. 왜 그랬을까? 그것은 내가 교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예의를 가지고 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또 목회에서 균형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치꾼이니, 운동권이니 하는 소리를 듣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패라…. 아쉬운 것이 있다면 2500평 예배당 건축 후에 여세를 몰아서 교회성장에만 집중했더라면 좀 더 큰 규모의 교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입당 이후에 부산교계와 시민단체, 교단의 일에 관여하다보니 에너지가 분산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담시간은 벌써 3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는 새해를 맞은 <기독신문> 독자들에게 ‘공도’가 바로서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덕담으로 대담을 마무리했다. 원로를 배웅하면서 아주 먼 과거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현실과 교회를 생각해보았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교회와 교단이 새롭게 세워질 것이다. 물론 지금의 아픈 현실 앞에서 진통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우울하지 않다. 원로의 덕담과도 같이 이제 바닥에서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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