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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도자다운 한해가 되자

일찍이 청조는 1870년대 양무운동을 시작했다. 이는 청조가 1616년에 세워지고 254년이 지나면서 쇠망의 기운이 나라 전체에 드리워질 때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도입하여 스스로 강성해지자는 자강운동 즉 사회개혁운동이였다. 이와 같은 시기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다. 애도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체제로 시작된 메이지 유신은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된 개혁이었다. 중국의 양무운동이 실패한 것은 지배층에서 개혁하려고 했지만 당시 집권층으로 청조를 몰락시킨 서태후가 반대하여 실패한 개혁이었다. 메이지 유신은 지배층인 대명들이 판적봉환이라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집권층 스스로가 이노베이션 즉 가지혁신에 뜻을 같이하여 성공한 개혁이었다.

역사를 보면 많은 이들이 개혁, 다시 말해 혁신을 막는데 앞장섰다. 소위 기득권층들이었다. 대체로 개혁을 막는 자들은 소위 권력과 정부, 기업 등 다양한 부류였다. 지금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교계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라고 요란을 떨었지만 교계는 대형 스캔들로 세상언론의 뭇매 대상이었고 교단의 심장인 총신은 정관개정이라는 9·15 쿠테타에 총장 재선출이라는 악수로 한국 교회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여기에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소위 재단이사들의 말이다. 지금은 총회와 전쟁 중이기에 총장 대행체제로는 안된다며 배임중죄 혐의로 기소된 총장을 다시 선임하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권 안에도 입에 담기 민망한 금품수수로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제있는 노회 언저리에는 금품에 침몰되는 인사들의 비행이 줄을 이으면서 돈 앞에 무기력해지는 교계의 부끄러움이 가득했던 한 해였다. 총회 안에 오르내리는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수백만원대 가방에 억대급 금품수수로 민망하기 그지없는 한 해였다. 막가는 총신에 대한 정치권의 제재는 허공의 메아리였고 총회를 우롱하는 모습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실천력이 없는 총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총회가 무기력해진 배경에는 총회 결의에 대하여 소위 사회법을 이용한 가처분 때문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총회와 한국교회는 지도층 스스로가 무너뜨린 부메랑 앞에 만신창이가 되어 회복 불능 상태에 있는 말기암 환자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지나온 날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비리 앞에 미래가 없는 교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새해에는 목사가 목사다워지고 장로가 장로다워지는 한 해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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